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한국교회와 예배당(일명 성전)의 건축은 지도자와 신자들의 공동관심사며 교회의 계획 중에 가장 중요한 소명 중에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예배당의 현대식 건축물 가운데 특별히 초현대식으로 건축을 선호하는 것은 신앙의 발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교를 나와 목회를 시작한 분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중대형 교회로의 성장을 목표로 삼는다. 성경은 구약의 성막은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헌물로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이동식 건물을 지었다. 주기적으로 이동하면서 광야 생활을 청산한 백성은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성막이 아닌 성전을 다윗왕이 계획하고 아들 솔로몬왕이 성전건축을 완성했다. 성전 건축을 위해 다윗은 무수한 금과 은, 놋과 철, 그리고 건설 자재로 백향목, 잣나무와 상아 그외 필요한 물품들을 수입하여 준비에 만 전을 다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보이는 성전에서 보이지 않는 성전으로 의미가 전환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인이 머리가 되시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몸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성전이라고도 하셨다. 사도들에게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 기상천외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성경은 기록했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이 성전에 대한 당시 종교인들이 의식이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보다도 그 성전 건물 자체를 우상시하는 것에 대한 질책임을 알 필요가 있다.     

 선교 초기에는 모든 교파가 동일하게 교회를 예배당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모르나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현판도 000교회라고 표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초현대식 교회건물이 들어서자 교회 이름을 교회라고 호칭은 하나 직접 그 교회 건물에는 제1성전, 제2성전으로 표기를 해 대외적으로는 교회라고 하지만 실제 건물을 향해서는 성전이라고 호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의 모임이 당국의 방역 계획에 의해 제적인원의 20% 미만만 참석하도록 해 실제 예배당은 거의 빈자리가 되다시피 했다. 신자들이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몸된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신령한 소명이다. 그런데 모이지 못하다 보니 교회 모임에 대한 의식이 모여도 그만 안모여도 그만이라는 사고로 전락되었다. 교회 모임에 대한 신앙적인 의식이 지도자나 중진이나 신자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다. 선교이후  200여년 동안 교회가 사회를 향해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 준 것은 그래도 모여서 예배를 통한 신앙을 배가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사회인들에게 신앙인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종교인 가운데 특히 기독교도들에게 거는 기대는 사회인들의 의식과 상식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인들이 기대는 종교인에 대한 감정은 종교인이 소유한 기본적 신앙이다.

교회 정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중 구약은 보이는 성막, 성전의 개념이고, 신약에는 보이지 않는 유기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영혼이 구원받은 백성들로 표현 한 것을 보면, 오늘날 교회를 건축하면서 목표가 중대형인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의 권력화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작고 초라한 건물을 소유한 교회는 명함도 못 내민다. 현대 교회는 예수님이 헐어버린 성전을 보이는 성전으로 다시 세우려고 온 힘을 기우린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따라서 영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성전인데 아직도 모이는 장소 개념인 성전을 고집하여 예배당 건축에 교회 재정을 올인하는 지도자와 신자들이 많다. 예배당을 초현대식으로 잘 지어야만 신앙 성공의 결실로 믿고 가르치고 있는 지도자들이 먼저 성경이 계시한 성전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인식함이 중요하다. 그러면 신자들의 생각은 바뀌게 마련이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준행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느냐 하는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영혼 구원과 구제, 봉사다. 여기에는 적잖은 헌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가 성도들의 헌금을 본래 목적이 아닌 성전이라는 미명아래 구약적인 개념을 끌어들려 예배당 건축에 심혈을 기우려 신자들의 헌금을 모두 사용해버리고 거기에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 신자들을 힘들게 한다. 이제는 초대교회처럼 교회의 본래 사명 진행을 위해 세속적 잣대보다는 신앙의 잣대가 필요하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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