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목사
황인찬 목사

바이러스 ‘코로나19’와 ‘코로나19’를 방역하는 이 정부의 방역당국이 우리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꿨다. 교회의 예배 형식까지도 훈수를 하고, 신학자이거나 대형교회 목사 그리고 교회 지도자라는 몇몇의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온라인예배’라는 생소한 형태가 당연한 듯이 바꾸기를 훈수하고, 교회들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게 강제함으로 ‘주일성수’의 신앙개념을 스스럼없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성수(聖守)하겠다는 사람들이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꼰대들의 아집으로 여기는 왜곡의 상황에 처하고 있다. 이러다가 온라인예배가 고착화 되는 것이 아닌가, 크게 두려워한다.

‘예배당 없는 온라인교회’가 현실화됐고, 온라인교회의 당회가 조직되고, 등록교인이 800명에 이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고 필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년간 교인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 오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이후 대면예배가 제한 없이 회복되더라도 그 이전보다 각 교회 성도가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예측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됐다. 그만큼 명목상(nominal)의 교인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Nominalty는 자신은 기독교인이라는 의식을 가지지만, 사실상 교회의 예배나 교회의 각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기독교인은 맞지만 교회에는 ‘안 나간다.’는 뜻의 ‘가나안’ 교인을 지칭하는 신종 영어표현이다.

국내의 3대 종교 중에서 유독 기독교에 일어나는 보편화된 현상으로 원인가운데는 ‘코로나19’많이 아니라 그 전부터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양극화 현상을 꼽는다. 

1년이면 약 3000곳의 개척(소형)교회가 문을 닫는다하고, 대형교회로의 쏠림현상으로 극단화 되고 있다. 대형교회는 이 쏠림현상을 표정관리 없이 즐기지만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누가 물어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면서도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교인들이 Nominalty이다. 도시의 대형교회 등록교인 가운데 많게는 70%까지 노미날리티 교인에 이른다는 통계를 접하고는 한탄하며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등록교인 1만 명인 교회의 경우 주일예배 참석자는 기껏 2500여명 내지 3000명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한 때 교회에 헌신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교회생활에 대한 회의(懷疑)를 느끼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때론 선호하는 교회나 목사의 설교영상을 보고, 교회의 부조리를 자기 관점에서 비판하며, 신앙생활에서 절대 중요한 ‘성도의 교제’를 거절 또는 무시하고,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 없기에 심지어 자기 가족들에게도 종교자유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이런 중에 정부는 지난 해 2월부터 바이러스 ‘코로나19’를 빌미로 한국교회의 보편적 예배를 지속적으로 제한하며, ‘행정명령’을 통해 강제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뜻 있는 단체와 교회들이 위헌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와 여권(與權)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를 의지대로 형성한 여론프레임의 덧을 씌우고, 공격하기를 노골화 하고 있다. 

물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국가가 질병예방을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질병예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자발적으로 국가방역에 협조하고, 많은 불편과 피해를 감수함에도 불구하고 일관성과 형평성을 깨고, 피해자인 교회를 역병의 발원지로 왜곡시켜 공공의 적을 만드는 일에도 서슴지 않고 있음이다. 

이에 대해 뜻 있는 목회자와 교회, 그리고 교회연합기관들이 나서서 “정부는 종교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을 중단하라, 기독교를 희생양 삼으려는 악한 행위를 멈추라”며 저항하고 있다.

오늘 우리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상황과 현실을 어떻게 타계할 것인가가. 두려운 숙제다. 이럴 때 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로마서 12:2말씀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

세상이 다 그렇다고 말하지 말라. 언제나 이 세상, 이 세대는 본받거나 따를 대상이 아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마음을 새롭게 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시대정신이나 위정자의 뜻 또는 여론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내 뜻과 세상의 현실과 요구 앞에서 진정 주의 종놈들은 결단해야만 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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