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으로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로
하나만 청합니다

“제 입에는 그저 아멘만 담으소서”

유안진 시인: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시인협회 고문 
시집 『달하』 『둥근 세모꼴』 등 17권 상재. 
한국시협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목월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구상문학상. 공초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이 작품은 유안진 시인의 근작 시집 『터무니』 끝 차례에 실려 있다.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이라면 시집 종결의미를 담았다고 하겠다. 물론 시집은 학술논문과 다른 면이 있지만, 결론 부분은 어디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쩌면 시편들 전체를 아울러 융합시킨 요소를 말하려고 고의로 설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 한 편만으로도 충분히 한 권 속에 실린 형태와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게 해준다.  
 첫 행의 ‘거두절미’ 란, 앞에 제시된 많은 작품들을 모두 제치어 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능한 신 앞에서는 서론이 필요 없다. 사실 그 분 앞에서는 언어가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다

2행의 ‘다짜고짜’도 마찬가지다. 신앙대상자와 직접 대화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당돌함의 모습은 화자의 신은 초월적 엄위하신 존재가 아닌,. 무한하게 인자하신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 신 앞에서 선 단독자 모습은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만나는 장면을 연상케 해준다.

3행의 ‘하나만‘은 가장 필요한 절박성을 보여준다. 하나가 전체를 지시한다. 반전의 모습이다.

기발한 면은 연과 연사이 빈 공간이다. 신 앞에서 묵상이나 명상의 순간과 같다. 이것은 그냥 여백이 아닌, 가장 무거운 대화 장면이다. 언어가 자리 잡을 틈이 없는 공간을 배치해 놓은 엄숙하고 경건한 부분이다. 시에서 연과 연 사이의 여백은 침묵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요한 공간이다. 

작품의 마지막 행인 “제 입에는 그저 아멘만 담으소서”에서 입은 언어의 기능이며, 언어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양식이다. 아멘은 진실로라는 뜻으로 인간의 요구를 신의 뜻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반응이다.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말한다. ‘맨 정신으로’ 드리는 기도, 이것은 시집의 제목 ‘터무니’와 이질적이며 상반성이라서 시집 전체가 융합시학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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