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성 교수
김 재 성 교수

9. 광혜원-제중원-세브란스 병원

알렌의 의술로 세워진 병원은 병마에 신음하던 한반도에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 새로운 현대의학이 들어오고,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등대가 되었다. 알렌은 갑신정변을 계기로 불안에 떠는 고종황제와 왕실 사람들과의 우정을 쌓으면서 절대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매일 불안에 휩싸여서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수조차 없이 그저 외롭고 힘들던 왕실과의 긴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직접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이 최우선적이다. 거리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이나 학교 등을 세워 그것을 통해 기독교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복음을 수용하는 데에 거리감이 없도록 만드는 간접적인 방법도 큰 효과를 거둔다. 알렌을 비롯한 의료 선교사들과 교육 선교사들은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그 부인들과 아이들은 자주 명성황후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기도 하였다. 명성황후는 가뭄이 심하자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는 등, 미신을 숭배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들 선교사들과 자주 만나고, 그 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다과를 나누며 서양문물과 기독교복음을 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1885년 2월 초, 고종은 쾌히 윤허를 내렸다. 

“귀하의 신청서를 받아 보았습니다. 

서울에 병원을 세우겠다는 귀하의 편지에 대한 우리 의정부(議政府)의 회한(回翰)은 이러합니다. 병원을 설립한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느끼는 터이며 병원이 설립되어 잘만 운영된다면 일반 백성들과 우리 자손들    에게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큰 뜻을 품은 알렌 의사에게 우리는 고맙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마침 큰 집 한 채가 비어 있으니 고치면 병원으로 쓸 만한 줄 알며 고치는 일과 설비 문제는 알렌 의사에게 알리겠고 상의도 할 것입니다. 督辦交涉通商事務 金允植(印)”

 병원 설립 윤허뿐만 아니라 병원 건물이 됨직한 가옥까지 희사했다. 갑신정변때 개화당의 일원이었고 우정국총판이었던 홍영식의 집이었다. 홍영식은 국왕이 궁궐을 떠나 청군진영으로 파천할 때에 호위를 하다가 청나라 군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83년 미국으로 가는 전권대사 민영익을 따라 함께 갔던 사람이었고, 개화된 미국의 문물과 서양의 뒤를 따라가는 일본을 보고 우리나라도 이제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홍영식이었다. 가문도 더할 나위 없고, 인물도 출중하던 사람, 덕망이 있어서 인심을 잃을 일도 없고 매사에 신중하던 사람이 나라 위하는 방법을 시류 따라 붙잡지 못했다 해서, 역적이 되었고 모든 가산을 몰수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가난하고 발전이 늦은 구한말 조선을 축복하시려고,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게 되는 사건들과 인물들과 시대적 정황들을 허용하셨다. 알렌 선교사의 사역은 복음의 역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낮아지려는 자들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한다. 머리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였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복음은 역설의 연속이다. 세상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원리요 불변하는 진리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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