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늘날 세계는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무질서한 상태에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무질서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목사는 주일 낮 설교에서 정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설파했다. 인간 모두가 탐욕에 길들여져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결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온이 발생하고, 세계 곳곳에서 홍수와 기근, 가뭄으로 피조물 모두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여기에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이 창궐해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신은 변종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강단에서는 기도하자만고 외친다. 그렇다 피조하나님은 자연의 아우성, 인간의 아우성을 듣고 역사하신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질서파괴는 생태학적 위기를 가져왔다. 생태학적 위기는 곧 자연의 위기이고, 인간의 위기이다.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의 삶 전체체계의 위기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한마디로 생태학적 위기는 자연의 위기, 인간의 위기를 넘어 가정의 생태계, 교회의 생태계, 교육의 생태계, 생활의 생태계 등 삶의 전체체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생태계에 도전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의 지혜로 해결될 수 없다. 또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지혜는 오히려 하나님의 질서를 더욱더 무질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다가 준다. 인간 모두는 바이러스도, 파괴된 자연도 요술을 부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헌데 인간은 서서히 진행되는 자연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져가고 있다. 고난을 감내하는 삶의 체계들만이 살아남을 있다는 것도 망각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하면서, 인간들은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감기 정도로 치부한다.

일본 도쿄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신종바이러스감염증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와 함께 올림픽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이다. 모두가 백신으로 코로나19 괴물로부터 탈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자나라만 백신의 혜택을 본 상황서, 가난한 나라에서 발전된 변종바이러스가 발생 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 도쿄올림픽이 무사히 끝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런 상황서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과 그 가치를 회복해서 이 난국을 회복하자는 외침은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창조신앙과 그 가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의 관계에 있어 평형의 체계가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와 역사는 발전과 팽창, 정복을 지향하여 설계됐다. 그렇다보니 인간은 힘을 내세워 자연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트린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삶의 체계에 적용된다.

하나님의 정의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성령을 팔아 먹고사는 장사꾼, 사이비가 됐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을 외친다. 모두가 바리새인과 헤롯이이 되어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를 분리시키고,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간다. 불의에 항거하며, 복음을 위해 세워진 6만여 한국교회는 교회답지 못하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교회의 생태계는 파괴됐다. 미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목사는 잘 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목사의 말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울림을 준다. 그렇다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며, 맘몬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공동체를 위해서 기여하지 않는다. 먹고살만하니까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해 잘살게 되었다면, 창조질서 파괴의 결과는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때문에 내가 혁명을 일으켰다면, 혁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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