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여름

이 여름을
한 번 울기 위하여
매미 유충은 땅속에서  
17년간의 세월은 보낸다고 했다 
깜깜한 지옥 어둠과 고독을 이겨내며 
한 철을 위한 준비가  
기도처럼 오래오래 이루어졌으리  
지금 
한여름 불볕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 
매미는 17년 동안 숙성시킨 침묵의 향기를 
저 쨍쨍한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다 
여름 지나면  
목숨도 그칠  
짧은 생의 핏빛 절창이 
8월 염천을 건너고 있다

문현미 시인
문현미 시인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안도현 「사랑」)는 시구가 떠오른다. 한낮 불볕 아래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참 덥다. 너무 더워서 땀눈물이 난다. 매미도 울고 사람도 운다. 우리 모두 여름의 뜨거운 강을 건너가고 있다. 더욱이 이런저런 뜨거운 상황으로 인해 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염천에 애간장이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겉으로도 울고 밖으로도 운다. 어디선가 눈물 없이 울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시는 매미의 일생을 탁월한 행갈이와 멋진 비유를 통해 서정적 감동을 준다. 자칫 전통적 서정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접근하여 속도 있는 호흡으로 살려내고 있다. 매미는 번데기 단계 없이 알, 애벌레 2단계만 거쳐서 성충이 된다. 암컷이 땅속에 200-600개 정도 알을 낳으면 ‘굼벵이’로 약 3년∼17년을 산다고 한다. 이런 애벌레로 사는 기간이 매미의 수명이다. 그런데 시의 제목 “17년 만의 여름”은 매미가 그만큼 “깜깜한 지옥 어둠과 고독”을 견디고 나서야 성충이 된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여름밤은 더워서 견디기 힘들지만 매미가 악을 쓰고 울어대서 더 힘들다. 하지만 매미의 울음 소리가 짝짓기를 청하는 수컷의 ‘구애’라는 걸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런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인 울음 소리를 시인은 “17년 동안 숙성시킨 침묵의 향기를/저 쨍쨍한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다”는 비유를 선택함으로써 역동적인 감각의 세계로 이끈다. 

 세상은 매일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와 잔인한 사건들로 인해 무척 소란스럽다. 노이즈의 홍수 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 단 한 번의 사랑을 위해 전 생애를 거는 매미의 ‘거룩한 열정과 매혹적 순수’를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깊은 사유의 결실인 빛나는 시어 선택과 연결로 인한 것이다. “핏빛 절창”은 판소리에서 소리꾼의 목청이 수리성에 도달했을 때 마침내 들을 수 있다.‘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오랜 기도를 해야만 응답 받을 수 있는 이치를 시를 읽으면서 묵상하게 된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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