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독일의 라이저 교수는 소명에 답하기 위해 학교를 선택했다. 그는 경제와 실용논리를 앞세운 직장보다 학교를 선택했다. 대부분 사람은 경제와 실용논리를 선택한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세상권력을 잡으면, 한자리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따랐다. 마가복음 10장 46-52절의 말씀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처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은 아닌지.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예수님을 경제적 사고에 종속시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지난날들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소명을 저버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물질과 실용주의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물질과 실용주의를 쫓는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잃어버린 맹인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기복신앙에 길들여져 출세와 명예, 기득권을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 이들은 경제적사고에 길들여져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신만 있을 뿐, 이웃은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돕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죽임당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 않는다. 건강한 공동체와 인류사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빈공주의와 과념에 사로잡혀 북한동포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과 가족을 위한 기도만을 드린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간구했다.

이들은 분명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받은 자가 아니다. 오늘 정치인들 중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소명받지 못한 대통령후보들을 본다. 이들의 입에서는 항상 실수를 연발한다. 이로인해 국민들로부터 몰매를 받는다. 우리는 이씨 조선말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매국노들의 말로를 본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겠다는 소명이 전혀 없었다. 천황을 섬기는 일본이 망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일본은 망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그의 부하들은 소명을 가진 백성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듭하자, 임금은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생각해 장군을 끌어 내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는 그 역사를 기억한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소명이 없는 임금, 일본 천황을 섬긴 매국노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한마디로 우리민족에게 있어 비극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대속물로서 이 땅에 왔다. 처음 예수님의 제자들도 소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권력을 잡으면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다.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 발하는 빛을 보지 못했다.  맹인과 같은 존재였다. 맹인 바디매오는 자신의 믿음을 통해 눈을 광명을 찾았고, 소명을 갖고 예수님을 따랐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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