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복음이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오직 진리로 생명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있을까? 세상풍토와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야 하는데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신앙인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관이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항상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원망했던 모습을 우리는 말세에 거울삼아 경계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나와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사흘길을 건넜지만 물을 얻지 못했다.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물을 만났지만 써서 식수로 사용할 수 없자 모세를 원망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여 물에 던져 쓴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을 주셨다. 또한 신광야에서 배고프다는 원망에 만나의 기적을 주셨다. 이런 기적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 도착해 마실 물이 없자 이전의 기적은 기억조차 못하고 또 다시 원망 불평하고 모세와 다투었다. 엄청난 불신앙의 죄를 반복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홍해에서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깊은 물로 덮는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에 찬양하며 경배했던 백성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모세는 민수기 133절에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지도자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곧 모세에게 돌까지 던질만한 이 상황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 앞을 지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잡고 호렙산으로 가라 명하신다. 그곳에 있는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올 것인데 그 물을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104절에 모세가 친 반석은 신령한 반석이며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한다. 반석에서 나온 물은 성령을 상징한다.(요한복음 7:39) 성경에 두 종류의 반석이 나오는데 지팡이로 때려야 할 반석과 때리지 말아야 할 반석이다. 먼저, 르비딤 평야의 반석은 추르로 낮은 지반을 뜻한다. 예수님의 인성, 초림으로 오실 메시야, 초림복음을 모형한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낮은 모습, 천한 자로 오신다는 것이다. ‘추르반석은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채찍을 맞으시고 결국 십자가 지실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성령 시대가 온 것이다. 민수기 2011절의 치지 말아야할 반석인 셀라는 돌출된 고반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한다. 초림 주는 첫 번째 반석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재림하시는 주는 고난당하지 않는 영광의 주를 예표한다.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물이 나와 백성들의 갈급증을 해결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우리 영혼이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갈증을 풀어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세속적인 쾌락에 빠지면 빠질수록 벌이 꿀통에 빠진 듯 더욱 깊숙이 들어가 결국 죽음으로 가게 된다. 땅의 것으로 쾌락을 찾아가면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를 잃어버린 삶은 죽었을 때 후회하고 회개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강단에서 주의 종을 통해 말씀으로 권면했을 때 회개하고 유턴해야 한다. 원망과 불신과 대적이 자꾸 반복되는 신앙이 되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생각, 고집, 자아, 나의 성질을 없애고 하나님 말씀만 쫓아가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어지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의 성화단계까지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배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 늘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삶 가운데 가득히 흘러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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