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택 목사
김 정 택 목사

계 11:1-2절을 보면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며 거룩한 성을 밟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측량을 받지 못하면 밟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라고 하는데(빌 2:12) 오늘날 교회는 복종하라는 것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 오히려 복종할 필요는 없고 예수를 믿으면 된다며 말씀을 대적하고 있다. 이것은 초림과 재림을 구별하지 못하므로 대적하게 되는 것이다.

초림은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려 주셔야 복종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애굽에서 무엇도 복종할 수 없다. 다만 애굽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것은 19절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 4: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며 그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으로 우리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된 땅으로 가라고 하여 지시할 땅으로 갔음에도 남아있다는 것이고, 또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사백 년 만에 돌아왔는데도 남아있다는 것이고, 또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낙원에 보내주시는데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남아있느냐면 예수께서 재림 후 이루어질 나라는 약속된 나라로 그 약속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아있는데 우리 중에 약속된 나라에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염려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히 4:2절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며 말씀과 믿음이 서로 화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맞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믿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 약속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말한다. 따라서 ‘믿음에서 믿음으로’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 18장에 예수께서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는 믿음은 초림의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재림으로 오실 때의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말씀과 화합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이 땅에서 어떠한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마지막 때 풀무불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함이요, 황충이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함이요 약속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이는 재림 예수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십일조와 헌물이 이 땅에서 어떠한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이 이 땅에서 복을 받기 위하여 십일조와 헌물을 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만나기 위한 나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라는 것이고, 그것을 깨달았으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자가 마지막 날 주인이 돌아와 잘했다고 칭찬받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어떤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당연히 드리는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신다(고후 9:6). 인색하고 억지로 드리는 자는 결단코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누군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말라기서는 마지막 때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십일조와 헌물은 이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복을 받기 위하여 드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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