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피어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세상살이가 참 팍팍하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이니 더욱 그렇다. 마음껏 웃고 울며 서로 부둥켜 안고 다독거려주던 때가 그립다. 두레상에 둘러 앉아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던 때는 아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종종 살 맛 나는 따뜻한 이야기도 들려오니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자신을 벌레라고 자책하는가 하면 누구는 남을 기생충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이는 스스로 행복전도사라고 말하기도 하고 환경지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 얼마나 긍정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야 그렇게 상상할 수 있을까. 시적 화자가 꽃으로 피어나 너에게 함께 꽃피우자고 한다. 

1연과 2연 두 번에 걸쳐 명령형(“말하지 말아라”)을 사용하는데도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좋은 뜻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계속 시행을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연 전반부에서 시적 화자가“나 하나 꽃피어”라고 했는데 후반부에서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으로 순서를 바꾼 게 눈길을 끈다. 먼저 너라는 상대를 존중해서 꽃피우도록 이끄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되면 “풀밭이 온통 꽃밭”으로 바뀌는 놀라운 전환이 발생한다. 나 하나 꽃피었을 땐 풀밭이지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꽃피면 꽃밭이 된다는 역동적 상상력이 신선하다. 이렇게 시를 읽다 보면 2연도 그냥 산이 “활활 타오르는”산이 되는 아름다운 반전이 나타난다. 또한 1연에서는 너로 촉발된 것인데 2연에서는 내가 먼저 촉매의 역할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각 연의 말미에 “아니겠느냐”는 설의법으로 반문을 하면서 동참을 유도하는 점이 시적 묘미라고 하겠다. 

쉽고 편안한 시어들로 구성된 시편이다. 하지만 시어를 어떻게 조합하고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평범해 보이는 시가 미학적 완성미를 지니게 된다. 시 전체에 흐르는 중심 내용이 함께 풀밭을 꽃밭으로 만들고, 그냥 산을 활활 타오르는 매혹적인 산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런 좋은 일에 은근히 함께하고 싶어진다. 고추잠자리가 붉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가을 들녘이 다가온다. 풀밭을 꽃밭으로 만드는 일에 나를 꽃피우고 싶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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