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정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위험한 감염병을 정부나 교회도 어떻게 속 시원하게 해결할 대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마냥 방역! 또 방역만 외치며 각자도생할 수 있기 위해선 거리두기, 손 소독, 마스크 착용 등등 지침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너무 오랫동안 강조하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둔해져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지배하여 방역 지침에 둔감한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교회도 재적인원에 비례하여 겨우 최대 20% 정도 만 비대면으로 모이게 하는 초강력 방역을 시행하다 보니 교회의 어려움이 배가되어 운영에 허덕이는 경우가 전국적으로 그 비율을 따질 수 없을 정도다. 본의 아니게 교회에 모여야 한다는 신자들의 열성이 때로는 당국의 방역 지침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모습도 간혹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기도 해 안타깝기도 했다.

간혹 교회의 진실성을 알려야 한다는 신앙심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자는 교회 모여야 하고, 죽음이 나를 갈라놓더라도 신앙은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강성 신자들의 행동이 당국과 마찰을 빚는 일도 있었다. 강북의 어떤 교회는 이러한 와중에 집회를 강행하다 보니 당국과 대치되어 물리적으로 해산하려는 당국과 신앙으로 무장한 신자들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매스컴은 교회의 불법성을 크게 보도하고 신앙의 경건함과 자율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우가 있어 공정 보도에 의아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당국이 교회를 믿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주일 예배를 감시하는 느낌을 주는 공무원들의 종교단체 현장 감시는 일제 강점기에도 그렇게 까지는 않고 교회는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단체를 믿지 못해 감시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들기도 한다. 교회가 하는 일들을 당국이 믿지를 못해 주일인데도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예배의 여부를 점검하는 일에 대해 정부의 정체성과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다. 물론 정부가 종교단체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방역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골육 제 책으로 실시함을 안다. 그렇지만 해방 76년 이래에 교회가 감시를 당하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임을 당국도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서로 믿음이 없이 불신이 조성된 현실이 애석한 일이다.

교회도 왜 무엇 때문에 당국에 빌미를 주어 감시당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교회가 어떻게 하여 당국에 불신을 초래케 했는지에 대한 각성도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교회가 외부의 세력에 의해 강제로 차단을 당하거나 신앙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을 때 신자들은 신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경우가 아직도 저변에 흐르고 있음이다. 그 순교의 각오는 오늘에도 분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줄로 믿는다. 

신자들은 오늘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은 바로 우리 당대의 신앙이 아니라 이는 수천 년 동안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전이된 신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 저변에는 불의에 대항하여 죽음을 불사한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초근목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쓴 지도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과연 오늘 신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순수성에 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자제 점검함도 먼저 있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했거나 아니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전 세계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있을 때 국가의 감시 이전에 스스로 자경단을 꾸려 국가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교회가 먼저 생각했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교회는 교회가 서 있는 나라와 대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다. 정부나 사회인들에게 교회를 믿게 하는 것도 교회의 책임임을 스스로 자책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교회는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회인들과 융화를 통해 기독교의 박애 정신이 순수하게 전해지도록 함이 옳지 않겠는지?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은 정체 상태다. 어떻게 이 정체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이세기를 넘어 삼세기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교회는 누구의 간섭도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 방향은 신자들 뿐 아니라 사회인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함도 중요하다. 교회의 순수신앙을 흐리게 하는 교파적인 색채나, 사회인들이 가진 사상과 이념의 불순한 생각, 세속적인 부의 추종을 위한 성장과 부흥의 잘못된 고리를 과감히 끊고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함이 중요하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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