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목사
김 창 주 목사

요셉은 형들이 엎드려 자신에게 절하는 순간 어렸을 적 꿈이 성취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형들이 이 사실을 알 까닭이 없고 양식을 얻기 위해 낮은 자세를 취한다. 요셉은 자신의 꿈을 떠올리며 짓궂게도 형들을 정탐꾼(~yliG>r;m.)이라고 몰아붙인다. 창세기 42장에 ‘정탐꾼’이 일곱 차례 언급된다(9, 11, 14, 16, 18, 30, 31, 34절). 이야기의 흐름을 관찰하고 있는 독자들은 당연히 요셉이 어릴 적에 형들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며 복수한다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식량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온 형들이 생각하기에는 억울하고 하소연 할 데 없는 모함이다. 

형들은 이집트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센 땅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이 진입로는 이집트에서 가장 붐비는 대신 가장 취약한 경계선이기 때문에 국경수비대의 경계가 집중되는 곳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이 오갔던 길, 곧 ‘해변 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사 9:1; 마 4:15). 즉 가나안에서 이집트 나일강 하류로 연결되는 지름길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출입국 관리가 엄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통행 객은 강도 높은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고 형들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탐꾼으로 의심된다면 벌써 체포되거나 입국 자체가 불가능하다. 형들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들어왔으련만 요셉은 스파이로 몰아붙여 궁지에 몰아넣는다.

정탐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므라글림(םילגרמ)은 흥미롭다. 히브리어 동사는 ‘걷다, 활보하다’(לגר)이며 아람어는 ‘빨리 걷다,’ 또는 ‘험담하다, 악의적으로 욕하다’를 뜻한다. 명사로 쓰이면 ‘발, 다리’ 등을 가리킨다. 정탐꾼이란 ‘발’에서 유래했거나 관련이 있다면 ‘달리다’에서 빨리 달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소식을 신속하게 전해주는 사람이 곧 므라글림이라는 것이다.<Zornberg, 275> 마치 필리피데스(Philippides: 530–490 BCE)가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력 질주해야 했듯. 한편 민수기 13-14장에 ‘정탐’(רות)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정탐은 본문의 그것과 전혀 다른 낱말이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선출된 사람들을 가나안에 보내 그곳 사정을 몰래 샅샅이 조사하라고 명한다. 흔히 첩자로 불리는 임무를 시킨 것이다.

요셉은 속으로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다그치면 ‘발 빠르게’ 아버지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실제로 요셉은 정탐꾼이 아니라면 재빨리 달려가서 아우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재촉하고 있다(14-15절).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우리가 지체하지 않았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라”고 보고한다(창 43:10). 사실 요셉과 형들이 정탐꾼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이 낱말이 묘하게도 일곱 차례 언급된다.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정탐꾼이다(12절). 이쯤 되면 형들은 자신들이 정탐꾼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친절하게도 요셉은 형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한다. 곧 형제 중 한 사람을 보내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고 그 동안 나머지는 인질로 잡혀있으라는 것이다(16절).

그러나 협상은 요셉의 제안대로 이뤄지지 않고 형제가 모두 삼일 동안 갇혀 지낸다. 삼일 후 요셉은 형들 중 시므온을 남기고 나머지 형들을 보내기로 조율한다. 요셉이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붙인 것은 분명 가혹한 측면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언급된 ‘므라글림’에는 하루 빨리 베냐민을 보고 싶어 하는 형제의 깊은 애정이 들어있다. 요셉의 속 깊은 효성(창 43:27)과 형제애(창 42:20; 43:29, 34)는 이후 두 차례의 속임수를 통해 반어와 역설로 표현된다. 한 번은 형들 자루에 돈을 넣어두는 방식으로, 다른 한 번은 베냐민의 자루에 잔을 숨김으로. 이로써 신속하게 전달되어야 할 소식이 늦어지지만 나중에 그들의 만남은 두 배의 큰 기쁨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첩보의 가장 큰 덕목은 신속 정확한 상황 파악과 재빠른 수행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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