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고, 지금도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교회 역시 정치권 주변을 맴돌며, 권력을 철저하게 이용해 왔다. 내년 3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정치적 이해를 위해 교회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다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후보 지지선언이 줄을 있고 있다. 교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도 과거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개신교는 구한말 황실의 비호를 받으며 조선에 들어와, 가난하고 우매한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개신교는 일제하에서 총독부와 긴밀한 협조 아래 선교활동을 벌였다. 일부 선교사는 총독부를 등에 업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다. 이런 연유에서 감리교의 감독은 천왕으로부터 일본 최고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많은 선교사들이 총독부의 주선으로 일본관광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 식민지세력은 정치적으로 조선을 지배하는데 교회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한국교회 역시 총독부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한국 장로교가 일본 총독부로부터 6개의 법인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총독부가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을, 역이용한 것이다. 총독부와 이해관계로 얽힌 대부분의 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의 범죄를 저질렀다.

한국교회는 천왕을 섬기는 일본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망각했다. 사실 일부교회는 강대국의 권력을 섬겨 왔다. 그렇다 보니 일제치하에서 정신대와 일본군으로 강제로 끌려가 온갖 고난을 당한 이 땅의 소년, 청년들의 아픔을 몰각하고,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는데, 일본 아베에게 사죄한 어느 교회 권사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권사의 돌출행동에 목사도, 교회도, 교인도,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가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성서적 진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결과이다. 해방 후에도 한국교회는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되어 왔다. 이승만 대통령이 장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교회는 이승만 정권을 지지했고, 좌우익 갈등에서 좌파에 의해 많은 교인들이 희생을 당했다.

군사정권 아래서도 한국교회는 최고 협력자였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피 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한국교회는 대통령이 불교신자라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가졌다. 고 조용기 목사 장례식장서 조문 온 야당의 후보에게 즉석에서 안수한 한국교회 원로들의 모습은, 한국교회가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안수도 머리에 손을 얹은 것이 아니라, 등에 얹고 안수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린 것은 진보적인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적인 교단의 목회자들이 취한 행동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언자적인 사명을 완전히 망각하는 결과를 드러냈다. ‘2022 기독교대선행동이 여야 대권 주자들을 향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동 행동은 일부 정치인들이 종교인들의 표를 의식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신앙과 관계없이 종교적 이미지를 언론에 노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배나 미사 혹은 법회와 같은 종교적 제례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것은 종교에 대한 존중의 표시가 아니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서는 이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짖는 행동이라고 경고한다.

한국교회는 기득권을 위해 정치가 종교를 도구화하거나 종교가 스스로 권력화 하는 현상을 묵과해 왔다. 또한 같은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특정 정치인에게 표를 주는 것은 성숙한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는 기독교선교를 방해하는 것이며, 교회가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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