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어둔 밤 더듬더듬 새로운 길 찾아간다
어머니의 말씀은 “세상이 다 책상이다”
사소한 바람까지도 허공 위의 책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물살에도 길이 있다
민들레 꽃씨 나는 것을 허투루 보지 마라
꿈이란 아무 곳에나 머무르지 않는다

-시집 『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에서

*최도선 시인: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현대시학』 자유시 등단
시집 : 『가을 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그 남자의 손』 『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 
수상: 『시와문화』 작품상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장과 구의 시조 형식 대신 행과 연의 자유시 용어로 살펴본다. 

첫 행의 세상은 어둠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은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찾아간다’는 말은 능동적으로 우주적 진리에 대한 추구는 세상의 현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알려주신다. ‘어머니’란 단순히 육체의 부모 지칭만이 아니다. 원초적 사랑과 생명의 절대성을 비유함으로 종교적 위치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 단초는 ‘사소한’ 것들, 예를 든다면 지나가버리고 마는 바람까지도 의미를 가진 사물로 대하라는 담론에서 출발한다. 사소한 바람도 깨달음의 원인이 된다면 커다란 바람인 태풍의 가르침은 말해서는 무어하랴. 

2연이 어머니의 말씀인가, 아니면 화자가 깨달은 새로움의 고백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자라면 이 작품에서 시인은 단순히 경구에 대한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가 새롭게 깨달은 바를 구분하기 위해서 연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1연의 마지막 행과 2연의 전체가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굳이 연을 바꿀 필요도 없다. 더욱이 시는 결국 자기고백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말씀에 대한 깨달음의 자기 성취다.

물살과 민들레 씨가 멈추는 것은 앞 연에서 말하는 사소한 사물의 예다. 멈춤이란 꿈이 현실화의 삶을 말한다. 즉 우연 같이 보여도 필연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살과 민들레를 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깨달음의 책상이 되는 것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강물은 지상을 흘러가는 것이고, 민들레 씨는 공중을 날아가는 것으로, 이 둘은 땅과 하늘의 모든 사물의 대표성이다. 이런 상반성(이질성) 구조는 융합의 미학성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명시 구조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 행에서 ‘아무 곳이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종교적 해석에 의탁한다면 섭리나 인연을 변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암시적 상징성은 철학이나 종교의 담론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기법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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