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렁길  

너는 지나가는 바람이었고
머문 적 없는 비였고
잠든 적 없는 별이었으므로

바닷내 푸른 미역널방에서 미끄러지고
붉은 동백숲에서 길 잃는구나

앞서 떠난 파도가
되돌아오며 발목 잡는
숨찬 비렁길에 들어서면


*김금용 시인:  동국대 국문과와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핏줄을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서(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 현대시』  『나의 시에게』 등
수상 : 펜번역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비렁길은 벼랑길, 절벽길의 사투리다. 구체적으로 여수의 금오도의 길로, 붉은 절벽은 그곳에 있는 어떤 사물이 붉은 색일 게다. 그리 아니어도 화자 마음이 절벽이 된 상황으로, 붉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시어를 의미도 없이 사용되는 일이 없다면 붉음도 의미망에 가두고 읽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연에 나오는 바람, 비, 별이 붉음과 등가성을 가진 것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자의 마음이 붉어서 만들어진 비, 바람, 별인 것이다. 비도 지나가고 바람도 머물지 않는다. 즉 이동성의 심리다. 별은 잠들지 못해서 생기는 안식의 결여다.

 2연에서 붉음이 동백과 동일한 이미지임을 알게 해준다. 비와 바람과 별은 원래 푸름으로 상징된다. 미역을 널어 말리던 절벽에 있는 동백꽃이 핀 곳에서 그런 것들이 길을 잃었다 함은 미역을 말리듯 이동성의 사물이 고정성의 물질로 존재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즉 화자의 마음속의 비와 바람과 별은 영원한 노마드다. 이런 방랑은 고정성을 의미는 수직성의 절벽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수평선의 파도로 이동성을 보여준다. 이런 이질적이고 상반성의 구조를 가진 요소를 보면서 모순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갈등과 아픔을 동백의 붉음으로 형상화 시키고 있다. 

 마지막 연 첫 행의 떠남과 돌아옴의 이중구조도 마찬가지다. 그것 자체가 방랑의 모습이다. 이처럼 이중적 구조는 융합시론의 목적을 가진다. 융합성은 상반성의 이미지가 새로운 은유의 창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통합시(엘리엇)나 포괄시(리처즈)도 같은 맥락의 이론이다. 은유를 위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상호충돌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 생긴 외연(extension)과 내포(intension)의 거리(이질적 요소)는 긴장(tension)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동일성의 이미지를 배제시키라는 뜻이다. 이런 이론에서 보면 김금용 시인은 분명한 창작이론의 바탕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즉 의도된 기획물로 예술작업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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