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내가 네 갈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아멘.

조선중엽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1572~1645)의 어머니 유 씨는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어깨 너머로 글을 깨우쳤지만, 시문에도 능해 학식있는 지식인도 그녀를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홍서봉이 세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유 씨가 어린 아들을 직접 가르쳤다. 그런데 아들이 이따금 학업을 게을리 하는 눈치가 보이면 엄하게 훈계하며 회초리를 들었다.

“너는 불행하게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 사람들은 아비없이 자란 너를, 버릇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그런 아들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고는 회초리를 비단 보자기에 싸서 장롱 속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 이유로는 아들의 잘못을 바로 잡는 물건인데, 함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 씨는 아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마다 자신과 아들과의 사이에 병풍을 쳤다 이를 본 마을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자 유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미와 자식 사이는 아버지처럼 엄격할 수가 없는 법이오. 이 아이가 너무 영리해서 글을 잘 외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자칫 하면 아이에게 교만과 자만심을 길러 주겠기에 내 얼굴을 못 보게 하는 것이라오.”

이런 비장하고도 엄한 어머니에게, <모범>적인 교육을 받은 홍서봉은, 훗날 조선 중기의 문필에 뛰어난, 문신이자 영의정을 지내는 훌륭한 재상이 된 것이다.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어떤 훈육이 좋을지 매 순간 고민된다. 칭찬을 자주해 주어야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훈계 없는 교육은 지식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인성과 인품은 가르칠 수는 없다. 

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바른 <모범>을 보이는 것, 이것이 최고의 자녀교육이 될 것이다.

분명 자녀교육은 미래를 향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현재에만 안주한다. 그렇다보니 미래를 전혀 설계하지를 못한다. 히브리인들은 미래를 설교하는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친다. 하나님은 이틀이면 가나안복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거리를 40년동안 광야의 훈련과정을 거쳐 광야에 들어가게 했다. 이것은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교육과정이다. 

파라오 압제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난을 당한 이스라엘민족이 가나안복지에 들어가면 파라와 똑같이 왕을 세우고,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괴롭힐 것을 염려한 하나님은 광야 40년이라는 훈련과정을 거키게 했다. 그리고 하나은 광야에서 히브리인들과 계약을 맺었다. 오늘도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 탈무드는 세계 모든 민족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들의 교육은 직물적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이나 주일학에서 교육을 할 때 <모범>적인 행동과 실천의 가르침으로 교육 받은 학생들은 인성과 인격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인 헤르바르트는  “교육은, 원래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부모(父母) 의 <모범>적 행동과 실천이 더 자연스럽고 호적한 교육자는 없을 것이다.”고 했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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