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처럼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예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는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뭇잎들이 알록달록 물들어 있는 가을날이었다. 길을 걸을 때나 창밖을 바라볼 때 눈과 마음에 가을의 향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이제 서서히 만추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있는 11월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고/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나태주11)을 보내고 있다.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을 곰곰 살펴 보니 모든 게 감사하다. 장미꽃에도 감사하고 장미 가시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계절을 지나가야겠다.

이해인 시인은 지금의 시기에 딱 맞는 <11월의 나무처럼>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세상 사람들은 계절과 상관 없이 사랑이 너무 많아도/사랑이 너무 적어도쓸쓸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히려 큰 사랑을 주신 당신을 떠 올리며 감사의 말을 드리지 못해서 쓸쓸한 가을로 다가온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시를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쓸쓸한 마음이 그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시적 화자의 선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갈등과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적 화자는욕망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바람으로 고운 새 한 마리를 앉히고 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그냥 새가 아닌 고운 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본래 새는 자유로운 존재인데 수식어고운을 선택함으로써 맑고 깨끗한 선명성을 부각시킨다. 마지막연에서 11월의 계절이 지닌 이미지를 청빈한 나무들로 압축하여 시적 묘미를 잘 살려내고 있다.‘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좋은 신앙시 덕분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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