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유학생과 밀항조선인 규합해 비밀지하항일운동 전개
아들 고 박용 목사 부부와 손자의 노력으로 독립운동 공적 입증

고 박중학 목사.
고 박중학 목사.

일본식민지 아래서 광주지역 독신전도단를 이끌며,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벌인 고 박중학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증경총회장 고 박용 목사 부친)가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특히 고 박중학 목사는 삼촌운동’, ‘야학활동등을 통해 신사참배거부와 민족주의 정신 배양 등 독립운동을 수행했다. 이런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으로 고 박 목사는 수원경찰서 경찰에 체포돼 1년 동안 온갖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이로 인해 고 박 목사는 광주공립고등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다. 광주일고는 개교 10주년을 기념해 동문들의 증언과 여러 문헌을 근거로 고 박중학 목사가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으로 퇴교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20201030일 명예졸업장을 유족에게 수여했다. 그의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은 아들 고 박용 목사와 며느리 장보연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 장손자 박장대의 노력으로 밝혀졌으며, 고 박용 목사는 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추서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난해 7월 별세했다.

고 박중학 목사는 1932년 이준묵, 차남진, 윤남하, 고영로, 박철웅, 정봉은, 이현필 등과 함께 광주독신전도단에 참여, 낙후된 시골지역을 다니면서, 기독교복음을 선포하고, 야학을 실시하여 어린아이들에게 민족정신과 독립정신 고취시켰다. 순천에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시골교회를 중심으로 음악학교를 열어 독립사상 고취, 삼촌운동(농촌, 어촌, 산촌)을 통해 지역 아동 및 주민들,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신앙 전파와 함께 신사참배 반대, 보건위생교육, 한글계몽 등 항일의식을 심는 활동 전개, 비밀리에 차남진 목사, 원대성 목사와 함께 조선애국독립회 결성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고인이 되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훈장.
고인이 되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훈장.

고 박 목사는 19382월 수피아여고 야산 토굴서 광주양림교회의 아동 및 청소년들과 비밀모임을 갖고, 야학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온갖 고문을 당하는 등 고난을 당했다. 고 박 목사는 석방된 이후 같이 수감되었다가 먼저 석방된 오다라니찌 목사의 도움으로 여수를 통해 일본으로 밀항, 그곳에서 동인의 도움으로 동경 성서고등학교 및 성서신학교를 수료했다. 또한 일본 중앙대학교 법정대학에 입학했으나, 일경의 수회에 걸친 검문과 조사명분으로 투옥되어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 근로생활과 매혈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또한 고 박 목사는 일본에서 재일유학생과 밀항조선인을 규합, 비밀지하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유학생들과 함께 간디전집을 탐독, 일제 전시체제에 대한 대응 및 행동요령을 만드는 등 앞장서서 항일운동을 수행했다. 고 박 목사는 해방 후 전남 장성군 비하면 비하중학교를 설립, 모든 재산을 헌납하기도 했다. 순천매산고등학교 교사를 비롯하여 광주석산고등학교 교감, 고흥여자고등학교 교장 등 평생 교육활동에 헌신했다.

한편 고 박중학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사무국장 및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성북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고 박 목사는 평생 청빈한 삶을 산 참 목회자였으며, 참 교육자였다.

고 박중학 목사의 후손으로는 염순애 사모 사이에 아들 용, , 민과 딸 혜선, 은영, 순영 등 6남매와, 손자 창대, 창은, 창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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