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은 제각기 다르다. 짙은 땅거미 속에 자기 그림자를 파묻고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걷는 사람, 하루 동안의 미진한 결과를 털어버리려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잊고 싶은 것이 많은지 때 이른 음주로 비틀거리는 사람…….

“마치 새들이 둥지를 찾아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며/날아가는 모습처럼, 저녁이면 우리는/저마다의 걸음새로 집을 찾아 꾸역꾸역 걸어간다”

그렇게 노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귀갓길을 매우 잘 그려낸 사진 한 장이 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한 스틸 컷이다. 이 작품은 ‘파리보다 매혹적인, 이미지의 마술사’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사라 문(Sarah Moon)의 흑백 사진 〈튈르리 공원의 수잔〉이다. 사라 문은 1941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후, 열아홉 살 때부터 9년간 유럽에서 유명 모델로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모델을 거쳐 영화계에서도 대성할 거라며 입을 모았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 때인 1970년, 사라 문은 카메라 앞이 아닌 무대 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단적인 화려함이 아닌, 다양한 깊이를 표현해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또 모델의 예쁘장한 얼굴보다는 그 이면의 아름다움에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 후 사라 문은 자기만의 예민하고도 영민한 감성을 바탕으로 피사체의 숨겨진 내면을 잡아낼 줄 아는 예술가가 되어갔다. 

〈튈르리 공원의 수잔〉은 빛과 구도, 흑백의 톤이 놀랍게도 아름다운 일치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공원의 마른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물들이 하나, 둘, 셋, 간격을 준 채 서 있고 그중 한 나무의 밑동 옆에는 빈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하루를 보냈을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 옆으로 휑하니 뚫린 길을, 한 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간다. 축 처진 여인의 뒤로 강아지 한 마리가 조용히 따라붙는다. 집은 아직 멀었고,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고대 숙인 그녀의 어깨엔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이는 쓸쓸함이 드리워져 있다. 해결하지 못한 어떤 문제가 있기에 그리도 고민스러운 걸까. 

〈튈르리 공원의 수잔〉에서 수잔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그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기도 하다.                          

  새세움교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