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인 
1913년 4월 4일~ 1975년 4월 11일 (향년 62세)
등단: 1934년 시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숭실대학교 문리대교수. 1973 서울특별시문화상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가을을 부르는 별칭이 많다. 명상이나 사색의 계절이라 한다. 그걸 위해 독서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작품에서는 가을을 기도와 사랑의 계절쯤으로 이해해도 가능하다. 가을을 시제로 만든 작품들이 많지만 기독교적 고백의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단연 뛰어난다.

이 글은 지면상 시 전체에 대한 해설을 생략하고 마지막 행의 까마귀에 대한 비유에 한정한다. 

그동안 까마귀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 사이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이는 절대적 고독의 이미지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시인의 성장과 신앙을 미루어 보면 그것과 거리가 먼 견해임을 알 수 있다. 소위 융의 원형심상으로 해석해보면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까마귀는 한민족의 설화 속의 이미지보다는 기독교적인 엘리아의 까마귀로 해석할 때 앞 연에서 말하는 기도들과 맥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진다. 즉 로뎀나무 아래에 죽음의 두려움으로 지쳐 있는 엘리아에게 구운 떡을 물고 와 준 까마귀로 받아들여야 전체 문맥이 부드러워진다. 

이런 면에서 비평학에서 말하는 전기적 또는 역사적 비평이 필요함을 알게 해준다. 김현승 시인은 목사님의 자제분으로 교육과정이 기독교 학교를 거쳤고 철저히 기독교 신앙에서 성장하였다. 당연히 작품 속 원형심상은 기독교적이다. 그가 말했듯이 「절대고독」은 키에르케고올은 신을 찾아가는 과장에서의 고독이라면 본인의 고독은 신과의 분리에서 오는 고독임을 말하고 있음을 보면 작품 속에 그의 신앙이 잘 배어 든 것을 알게 해준다.  그의 「절대신앙」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배경을 토대로 읽어 본다면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로뎀나무 위에 다다른 구원 손길을 기다리는 신의 응답의 모습이다. 그럴 때 비로소 화자의 절정하고 애절한 기도가 신의 손길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게 된다.

부연한다면 흰색 백합과 검정 새인 까마귀의 이질적 색의 배치다. 내용을 떠나 멋진 그림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