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남편이 아내를 지친 얼굴로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에게 죄인이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이었는데, 사업자금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가져다 써버렸다. 아내 몰래 집문서를 저당 잡혀 빚을 얻기도 했다. 그 사업이 잘되지 않아 빚더미에 앉았다. 아내가 한 푼, 두 푼 모아 장만한 집이 사라졌고, 형제와 친척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친구들도 그를 멀리했고 한때 둘도 없이 지내던 사업 동료들도 그를 피했다.

그는 도저히 아내에게 돌아갈 면목이 없어서 여러 곳을 방황하다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러나 그 여자와도 헤어졌다. 아내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히 절망했다. 집문서를 몰래 가져다가 저당 잡힌 것도, 자기 몰래 무리하게 빚을 얻어다 쓴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다른 여자까지 생겼다니……, 아내는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혼 서류를 쓰고 도장을 준비 했다. 그런데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괴로운 날들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행색을 보니 기가 막혔다.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지쳐서 돌아온 남편을 보니 아내는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는 한참을 벽에 기대어 울다가 일어나 밥을 지었다. 밥이라도 먹고 나서 이혼 얘기를 꺼내자 싶었다. 아내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지었다. 

한쪽 구석에 죄인처럼 앉아 있던 남편을 불러 밥상 앞에 앉혔다. 그런데 남편이 찌개를 몇 술 뜨다가 어깨를 떨었다. 삭막한 세상을 떠돌며 온갖 아귀다툼 속에 있다가 돌아온 그에게 가정의 평화와 안식은 너무나 따뜻했다. 남편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아내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 아내가 지어 준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 그 밥의 힘은 남편을 변화시켰다. 그 후 남편은 달라졌다.

아내는 어느 날, 이혼 서류를 찢어 버렸다. 온종일 부지런히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남편을 보며 증오도 원망도 사라져 버렸다. 증오의 바윗덩어리를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다. 그렇게 두 부부는 사랑을 찾았다. 잃었던 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가족을 되찾았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참 쉽다. 그렇지만 용서하는 일은 참 어렵다. 나를 해롭게 한 사람,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나를 눈물짓게 한 사람을 용서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용서의 철학에 대해 영화 <밀양>을 비롯해서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었지만, 과연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일지, 용서해야만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본다. 증오를 안고 있다는 것은 내 가슴에 크고 무거운 맷돌 하나가 얹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내 가슴에 칼을 품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서리를 품고 산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그 맷돌로 인해 자꾸 무거워진다. 내 마음이 그 칼로 인해 예리하게 베어진다. 내 마음이 그 서리로 인해 자꾸만 춥고 아립다.

나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사람, 평생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이를 악물게 만든 사람, 복수하고 싶은 사람, 원수 갚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한 그 무겁고 차갑고 예리한 통증 때문에 내가 더 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용서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용서는 나를 위한 일이다.

마음에 성능 좋은 지우개를 하나 마련해 볼 일이다. 그래서 미움과 상처를 깨끗이 지워 버릴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이다. 왜냐면 용서를 하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더 멀리 나갈 수 있고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새세움교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