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도 어김없이 분쟁과 다툼이 여전한 한해였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니 ‘코로나 19’로 인한 고통에 이어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탓인지 그 어느 해 보다도 교계도 분쟁과 갈등은 심화 되어 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자.

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예수님의 재림시기는 노아의 때와 같다 하셨다. 노아의 시대야말로 죄가 관영 한 시대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악이 횡행하는 시기, 진실, 정의 등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때, 오직 바벨탑을 쌓는 등 인간의 욕망만이 그 정점에 이르다 보니, 작은 이익을 위해서도 신앙 아니 인간적 양심마저도 팔아먹는 거짓된 믿음에서 나오는 자기의 주장만을 정당화하려는 악순환과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기가 가까워졌음을 가늠해 볼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부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이루신 일,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 등을 품고 그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행동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을 불신하는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악을 행하는 자는 그대로 악을 행하겠지만, 예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오십니다. 

어느 중년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에 배에 가득 찬 가스가 폭발하였다. 뿌-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안은 악취로 가득하게 되었고 그 순간 문이 열리자 하선하였다. 이때 앳된 아가씨가 급히 그 ‘엘리베이터’ 안에 몸을 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하는 순간에 한 건장한 청년이 헐레벌떡 들어 왔다. 이윽고 “윽 이게 무슨 냄새야?”하면서 아가씨를 바라본다. “오빠 난 아니예요, 난 아니라고요” 청년은 말했다. “세상에 너무 지독하다 구역질이 날 정도야” 하면서 또다시 아가씨를 바라본다. 아가씨는 “난 아니예요, 난 아니라고요” 외마디를 지르고는 그만 울어 버렸다. 누가 이 아가씨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주변에는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악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가씨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누명 속에 통곡하는 이들이 많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누명을 누가 어떻게 벗겨 줄 수 있을까? 

법(法) 집행의 권한을 가진 자들은 말한다. ‘그 누명(죄가 없음)을 벗을 입증하라’ 
그러나 그 입증은 정죄 자들이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피의자 또는 피해자에게 입증을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뿐인가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교계도 다중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혼란한 한해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쁜 신앙으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다시 오신다고 하신 예수님을 모독(冒瀆)하지 말고,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주 에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하는 복을 받아 누리 새해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1-4)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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