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가을이

마당가 장독대
가을 햇살 등진
노란 국화꽃이 외롭다

외로움도
가을로 익으면
저리 황금빛 무게로 빛깔 할까

빈집 가득
누렇게 금박된 한나절 고요가
툇마루에 기대어 앉아 있다

 -『조선문학』 21년 12월호에서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무엇(what)을 말할 것이냐 보다 어떻게(how) 표현해서 전달하여야 하는가가 시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는 당위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융합시학에서 말하는 이질적인 두 모습 즉 빈집과 가득한 가을 모습을 대비시킨 제목부터 소위 의도된 기획물이라는 용어에 잘 들어맞는다. 비어서 오히려 가득함이 드러나는 것은 렘브란트 그림에서 흑백의 양극화로 빛을 더 강조하는 기법과 같다. 밝은 빛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 주위에 진한 검정색을 칠함으로 밝음을 더 극대화시키는 것과 동일한 면이다. 

1연에서 3연 마지막까지 동일한 색은 노란 색이다. 노란 국화나 황금이나 금박은 모두 가을을 그리기 위해 동원된 빛깔이다. 같은 노란 색을 강조하고 덧칠함을 통해 마지막 연에서 고요라는 비가시적인 정서를 선명하게 감각화시킨 기법이 바로 의미있는 형상화 작업이다.

2연에서 외로움도 비시각저인 정서다. 그러나 형상화를 위해 가을 열매라는 말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것은 창작론 용어들을 만족시킨다. 즉 내포를 확장시켜 원거리에 원관념을 펼쳐 보이는 소위 낯설게 만들기 작업이다. 이때 생기는 공명현상이 미학성이다.

 마지막연의 금박된 고요, 그것도 툇마루에 앉아있다는 의인화 작업, 이런 그림은 빈집에 가득한 외로움과 동시에 풍요로움으로 제시한 양극화를 융합시킬 때 미학적 진동현상(감명感鳴)이 확대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햇살, 황금빛, 금박 등이 지시하는 상징은 천상적 존재에 대한 암시다. 국화도 가을꽃이다. 즉 결실과 함께 종말론적 시대의 상징어다. 황금빛인 햇살이나 금박은 동일한 원형심상을 가진다. 천자(天子)로 상징되는 황제 제복이 황금색이듯 햇살도 천상의 이미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곧 단순한 가을풍경화가 아닌 마음 속 빈집에 충만한 신적 임재를 형상화한 것으로 읽어야 할 개연성도 가진다. 

비어 있음과 가득함으로 이질적이고 상반적인 양극화 이미지가 융합할 때 미학성이 극대화한다는 융합시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