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고 현 목사
김 고 현 목사

그 옛날 성탄절를 생각해 보면, 기쁨과 즐거움은 현대의 성탄절보다 곱절로 많았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초대교회 교인들을 다 예수쟁이로 불렸다. 여기에는 비아냥과 함께 일반인과는 뭔가 다른 사람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농한기 겨울철에도 노름하지 않는 사람,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 항상 성경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 남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 그래서 함께 어울리기에는 뭔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는 사람, 이런 의미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어느 신문사 종교부 기자는 한 목회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기독교가 전에 비해 요즘은 뭔가 이 사회와는 다른 면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기독교가 그런 역할을 못해 기사화할 것이 없어졌다”과거 교회가 부흥되고 교인들이 성령 충만하고 그럴 때는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 모두가 위기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위기를 위기로 인식한다는 것이 한국 교회에 '희망의 씨앗'이라고 한다. 오래 전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밥을 먹는데 예수쟁이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다른 종교에서는 안 그러는 데, 왜 유독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예수쟁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도 굳이 이렇게, 기독교인에 한해서만 이런 단어가, 쓰이지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목사님은 대답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열심이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괜히 심술궂은 마음으로 낮게 표현 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사람의 성향은 자신과 같이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많았다. 초대교회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예수님를 믿는 것이 열정적이고, 믿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열심을 냈다. 이 광경에 사람들은 교인들을 자연스럽게 예수쟁이로 만들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가다가 함께 동행해서 탔던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라는 신분이 드러났다. 택시 기사는 자신이 안수집사라고 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야기를 하며, 교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먼저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형은 의사이고 교수라고 했다. 장로로 교회를 잘 섬기고, 아버지는 시골에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여 그 복으로 자녀들이 잘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 모두가 출세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출세하는 개념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기에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기도로 양육하여,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주변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기도와 자녀가 잘 되리라는 진취적인 믿음 안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면, 분명 좋은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한교연 총무협 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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