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 새해 연속기회(2)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세상 도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2022년 임인년 새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혼돈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나님의 세상이 도래했다. 모두가 새로운 세상에서는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가 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갈등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했다. 그 결과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1천년동안 지배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것은 분단 74년을 맞은 한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제국주의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분단된 한민족은 서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서로 이념논쟁을 벌였다. 이사야는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가닥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사야서 251절과 6-8절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이사야 251),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256-8)

이사야는 1절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사야의 말은 서로 갈등하며, 반목하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탐욕과 욕망으로 혼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실함과 진실함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진리이다.

어둠의 역사는 인간의 탐욕과 갈등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오늘도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성지인 종로5가가 범죄자의 소굴로 변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충성하지 않고, 자신에게 충성한 결과 비난을 받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했다. 헌데 오늘날 목사들의 입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쏟아 낸다. 이것은 인간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며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용기 필요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화해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 되자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인

인간이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바른 길로 가면, 하나님은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간은 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상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막 산다. 오늘 대한민국은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한마디로 인격살인에 가깝다. 이들은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여야 한다. 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후보 모두가 가족범죄집단이상이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막말은 백성을 생각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유독 백성의 행복이 꿈이었던 성군 세종대왕을 그리워한다. 한민족의 꿈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민족통일이다. 이 꿈을 이루어 줄 후보가 누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의 입에서 강대국의 입을 빌려 평화를 이루자는 로마평화(팍스)를 부르짖는다. 모두가 생명의 주님을 잃어버렸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만큼,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남북한 민족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걱정하며, 하나님께서 한민족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희망찬 새해 임인년, 생활형편이 낳아져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공동체를 생각하며, 남과 북이 화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일의 꿈이 실현되는 그날을 생각하자.

얼마나 가슴이 벅찬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마감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은 화합하지 못했다.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며, 만족의 미래를 향한 꿈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일제 36년의 피압박 속에서 해방된 남북한 민족은 이념갈등을 벌이며, 하나의 언어, 같은 문화 속에 있는 민족끼리 서로 죽이기 위한 무기경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남북한 민족의 소통과 한반도의 평화, 한민족이 하나 되는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약탈에서 해방돼 곧 바로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와 IMF,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경제주권을 강대국에게 빼앗겼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이를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 선진국이 됐다. 그러나 남북한의 관계는 용광로보다도 뜨겁다. 언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또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모두 자기 안에 갇혀 미지의 세계와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라를 걱정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나가라고 한다. 버림받은 자가 있는 곳,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그들을 섬기라고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삶이 허락 된다. 성서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고 분명하게 교훈한다.

한반도의 평화, 한민족의 화해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중략)/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사”(이사야 6618-23)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민족, 이방인까지의 구원을 약속했다. 이사야는 세계민족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드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꾸게 했다. 이사야는 새로운 세상의 꿈을 그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남한 국민들의 하나님이다. 북한동포의 하나님이다. 세계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다. 교리와 전통신앙을 붙잡고 행동하지 않는 교인은 1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

이제 남북한 민족은 이념적 갈등,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세상,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민족통일을 위한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교회가 열려 있지 않으면, 목사의 설교와 기도는 허공을 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유대인의 관념은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어 버렸다.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해 놓고, 하나님을 가두어 버린 한국교회의 모습 아닌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행동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행동하지 않는 교인은 가짜이다. 이런 교회와 교인은 성령을 도매금으로 방매하는 교회이며, 가짜교인이다. 복음을 헐값으로 뿌리는 교회이며, 교인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간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교회다운 교회, 교인다운 교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모두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위험을 피한다. 될 수 있으면, 적게 행동하려고 한다. 기독교는 행동하는 종교라는 사실을 잊었다. 안일한 신앙생활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 할 수 없다. 새로운 세상, 미지의 세계를 받아드릴 수 없다. 성서는 어린양과 같아야 구원받는다고 교육한다. 사실 어린양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예수님도 천국은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어린양은 그 스스로가 약자이다.

교리와 전통신앙 뒤에 숨지 말라

오늘 교회는 예루살렘의 향한 뿔처럼 이웃을 사랑 할 줄 모른다. 북한의 형제들을 적대시 한다. 로마평화(팍스)만 부르짖는다. 모두가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이웃교회와 이웃단체, 이웃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교회 안에서는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다. 성령을 몰각했다. 그러면서도 성령! 성령! 하며 성령을 도매금으로 매도한다. 이들에게는 해도, 달도 필요없다. 오직 지켜야 할 이데올로기만 있다. 기득권만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념으로 북한동포들을 적대시하면서, 한국에 대해서 갑질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을 침탈한 일본에 대해서도 관대한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생명의 양식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양의 성전에는 생명의 떡이 차고 넘친다. 누구나 어린양의 성전에 들어와서 함께 나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어린양의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일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드리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하나님의 세상,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꾸자. 이제라도 남북한 민족은 남북한이 하나 되는 통일의 꿈을 키워야 한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은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한다. 이들 나라는 남북한이 긴장상태에 있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는 꿈을 키울 수 있는 첨단기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미국까지도 한국을 끌어드리려고 한다. 러시아도 자신들의 첨단기술을 한국에 주며, 함께하자고 손짓을 한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중국은 김치를 비롯한 한복, 한글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떼를 쓴다. 영화 <기생충>, <오징어게임>은 우리사회의 극단적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애국주의가 강한 나라는 자신의 모순을 영화주제로 삼을 수 있다.

자기모순을 말하면, 사상범으로 몰고 가던 시대는 지났다. 정치적으로 성숙해졌다. 대한민국은 희망의 꿈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 상태 그대로 있으면, 남과 북의 분단은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스라엘은 1천년 동안 희망을 잃고 방황했다. 지금 마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통일은 없다. 방황하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

새로운 세상, 하늘은 열렸다

임인년 새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하늘이 열렸다. 폐쇄적인 예루살렘 성전이 열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이 열렸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평화를 상실했다. 로마평화(팍스)의 소리만 들린다. 중국과 미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남북한 민족은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함께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 남북한 민족은 이데올로기에 갇혀 74년 동안 자기 것을 지키기에 바빴다.

74년 동안 남북한 민족이 화해하지 못한 것은 한민족의 자존감을 상실케 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어버렸다. 재물은 많은데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세계의 모든 재물의 70%가 북반구 몇몇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남반부 30% 인구는 아사직전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 있다. 선진국들은 남반부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몇 명 사람들을 살찌우고 있다.

남반부의 지도자들은 이 돈으로 무기를 구입해 자신의 아성을 쌓는다. 코로나19의 현실 속에서 북반구의 나라들은 백신이 남아돌아 폐기하는데, 남반부의 가난한 나라 백성들은 백신이 없어 신종바이러스감염증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꿈도 없다. 꿈을 상실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이러한 명령에도 교회는 이들을 위해 1달란트 받은 종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세상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 심판 날에 다 이루어 줄 것으로 여기고 사회와 역사, 가난한 이웃나라의 형제들을 방관한다. 이러한 모습은 1달란트 받은 종의 변명처럼 허구이다. 하나님의 전능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희망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전능은 남북한 민족의 화합과 한반도의 평화, 평화적인 민족통일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위한 모험의 근거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나라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보다도, 교회와 자기 자신에게 충성한다. 자신에 충성하는 사람은 미지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용기가 없다. 이런 교회와 사람은 나와 너, 그리고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런 사람은 나쁜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안기 때문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한국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않은 죄가 크다는 것을 깨닫자. 굶주린 자와 억눌린 자와 병든 자들과 함께하지 않은 죄 또한 크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 병든 자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자. 그리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의 화해를 노래하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희망의 꿈을 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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