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의탁하다

이제 내 여일 의탁할 곳은 시밖에 없네

세상에서 누구를, 무엇을 믿고 살겠는가

바라건대 시여! 더 푸른 영혼을 주소서

-『월간문학』 2022년 1월호에서

* 임병호 시인: 수원 출신.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한국시학편집인, 발행인.
시집 : 『적군묘지』 『영혼동행』 등 24권. 
수상:  예술문화상, 전영택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등 다수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이 작품은 짧으면서 많은 의미망을 가진 언어운용 즉 시적 비유가 탁월하다. 여기서 단순히 詩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다른 시편으로 눈치 챌 수 있다. 같이 실린 다른 작품인 〈영혼 동행〉을 보면 금방 눈치를 채게 해준다. 

 ‘시는 사람답게/ 사람은 시답게// 그렇게 살려고 오늘도 먼 길 왔다’   이 작품도 시가 주제인, 역시 3행의 아주 짧다.

 시는 무엇을 말하려고 동원된 언어일까. 서둘러 말하면 詩가 神의 속성을 연상하게 하려는 은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에서 자음(ㄴ)  한 자를 붙이면 신이 되듯이 시는 화자의 최고 가치이며, 목적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의 총체적 대명사로 보면 이해가 쉽다. 당연히 시라는 단어를 일차적 지시어의 언어 법주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구원을 향해 가는 순례자며, 시는 그걸 이루는 궁극적인 존재다. 그러나 반드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두 편의 작품을 이어서 생각한다면 Muse라는 기능일 수도 있다. 2연에서 ‘누구’라고 하는 거나 ‘무엇’이라고 말함은 종교여부를 떠난 지선의 존재이며 그런 가치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물론 화자가 기독인이라는 전기적 해설을 보탠다면 우선적으로 종교적 대상으로 읽어야 타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시인은 두 편의 작품에서 끝까지 시의 특성 중 하나인 애매성을 잘 알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데, 그 결과 읽는 사람이 각각 상상이 주는 다양한 함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걸음 나아가 마지막 연의 ‘푸른 영혼’을 포괄적으로 읽어낸다면 시는 영원한 가치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것을 창조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시를 쓰는 목적은 일종의 신앙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는 적은 수의 언어로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하는 언어예술이다. 언어가 짧다고 내용마저 짧다고 보면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적 공간에 언어의 일차적 의미를 초월한 많은 사유를 담고 있음을  이 작품이 잘 보여주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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