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소리 없이 젖어드는 봄비에도
온몸 내어주는 끝없는 대지와
어머니 같은 흙의 풋풋한 생기
사계절 내내 기쁨과 감격 선사하는
저 눈부신 하늘

누이의 정겨운 노랫소리와
내 치맛자락 잡아당기는
눈동자에 슬기 가득 담은 어여쁜 아기
동네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낡은 소파에서 담요 덮고
책 읽다 스르르 졸고 계신 할머니의
눈송이 같이 곱고 하얀 머리칼

따뜻이 포근하게
잠자리에 드는 일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

* 강인주 시인 : 치과의사 《가온문학》 등단 
  시집: 『낡은 일기장을 닫다』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문학에서 영원한 담론은 존재와 사랑이라는 주제다. 이 두 가지를 철학과 종교에서 끊임없는 사유로 이어온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 작품도 통찰로 얻게 된 존재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다. 

시의 정의 중 하나는 사물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언어예술이라는 점이다. 그럼 강인주 시인은 <삶>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보았으며,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우선 시편의 구조를 분석해 본다. 형식주의 비평 방법론으로 의탁해보자는 뜻이다.
1연은 봄의 절기에서 감각하는 어머니와 대지(흙)와 하늘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 2연은 누이와 아기의 웃음소리로 변용한다. 그러나 3연은 앞 연과 딴판(相異)이다. 낡은 소파와 할머니의 머리칼로 이질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연은 결론 부문으로, 잠자리에 든 사람이 새로운 아침을 다시 보게 되리라는 신뢰를 들고 있다. 미래가 실현되는 반복적 아침의 이미지로 내세관을 고백하고 있다. 즉 절망 대신 희망을 제시한다. 이것은 염세적이거나 허무주의와 달리 긍정적인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소파나 할머니의 이미지가 주는 허무와 절망을 마지막 연에서 반전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회귀하는 단면이 이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확장해서 상상한다면 사후에 다시 태어남으로 존재의 불멸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각 연에서 열거한 사물이나 대상은 시인이 의도적 엮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엘리엇이 말한 시는 ‘의도된 기획물’이라는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 쉽게 말해서 잘 짜여진 구조라는 것이다. 현존(Da Sein)이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거대 담론을 삶의 현장(현존의 위치) 이야기인 미세담론을 들어 독자가 감각할 수 있게 제시하는 점에서 생동감을 만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일상적인 사물(physical)을 새로운 의미로 전이(meta~)시켜 만드는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 모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