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자녀(子女)들아 너희 자신(自身)을 지켜 우상(偶像)에서 멀리하라(요일 5:21)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교계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그 목소리가 성도, 구원, 교회 등에 목적을 둔 것일까? 정의, 정직, 애린 등의 실현에 목적을 둔 것일까 하는 등의 질문에는 갸우뚱해진다.

목사, 장로 등 교계 지도자들은 세상의 최고경영자와는 그 출발점에 대한 이해부터가 다르다. 세상의 CEO는 기업 성장을 통한 경제적인 요건의 충족에 집약된다면, 기독교 지도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을 누리는데 그 초점이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업 경영의 목적과는 그 괘를 달리한다. 단순히 교회 성장 위주의 방법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부작용이 불러오게 되고, 종국에는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세상의 CEO들은 과정(수단)은 문제 되지 않고 결과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한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들은 어떠한 결과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 과정을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성장주의에 빠져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추구하며 달려온 나머지 심각한 부작용이 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사도행전 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을 외쳐 왔지만 개혁에 대한 본질이 실종됨은 물론 개혁을 외치고는 있으나 무엇을 개혁하자는 것인가에 대하여는 혼미해질 뿐이다. 해서 이제는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마저 자못 구호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목사, 장로 등 교계 지도자들은 사회의 CEO들이 추구하는 명성에 앞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즉 오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행하는 복을 누리고자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성도 즉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는 말씀을 새기며 성도의 신분으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분명 세속의 CEO와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갖 불편 부당 부조리, 부패 등의 골을 깊게 하면서 가라지 등이나 번식시키는 회칠한 무덤의 봉분만 높이 쌓아간다면 차라리 세속의 CEO의 길로 나가 사회에 공헌해라. 교계 지도자라면 정의, 정직, 책임감 등으로 하나님의 공의(시 7:9)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라면 원칙이 없는 성장의 종국은 교회의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존경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북한에 ‘칠골교회’를 마지막까지 지키시고,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의 위기에 있을 때에 분열을 막기 위한 조정 위원 중 한 분이셨던 ‘김오성’ 목사님께서 “일 많이 하려 하지 말고 죄짓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다. 불의 등을 은혜나 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결과주의’야 말로 회칠한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CEO와 같은 부와 명예 등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의롭고, 정직하고, 책임감 등의 신앙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복을 누리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독려해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거룩한 백성 곧 성도(聖徒)’임을 고백하는 삶의 복을 누리자.

  (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1-46)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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