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BC 3세기경에 이루어진 70인역(septuaginta, '70'을 의미, LXX은 현재 존재하는 구약성경 번역판 중 가장 오래된 판본 가운데 하나로, BC 300년경에 고대 그리스어(이하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현대 기독교 구약성경의 원본으로 사용되었다.)에서 모세의 4번째 책이라고도 불리는 '광야에서'(히. Bemidbar)를 "민수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의 긴 종살이에서 해방된 후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전 광야에서 보냈던 광야교회 40년 세월의 기록이다. 

이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체험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함을 스데반 집사가 사도행전에서 교훈한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행 7:38)
복음증거의 현장에서 순교한 스데반집사의 설교 중에 조상들의 광야 40년을 "광야교회"라 설파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들도 "광야교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광야교회의 핵심은 훈련이다. 풀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 허허 벌판의 들과 산인 시내광야는 뜨거운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한 세월은 무려 400여년이었는데 모세의 인도로 종살이를 벗어나 젖과 꿀의 땅 가나안을 향해 홍해바다를 건너 시나이 광야로 나와 그곳에서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다. 넉넉잡아도 몇 개월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무려 400여 년 간의 오랜 세월 종살이를 통해 민족의 정서 속에 종의 근성(根性) 즉 DNA를 가지게 되었다. 그 근성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새 땅에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가 없음이 당연하기에 광야에서 40년에 걸친 훈련을 통해 자유인으로 거듭남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영적인 수련공간이었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 대업을 이룬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광야에서의 시련을 통해 훈련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역사에 남을만한 능력을 타고 난 것은 아니었을 지라도 광야에서 시련의 훈련으로 자아가 깨지면서 변화되고, 새 그릇으로 태어나 광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이룰 수 없었던 큰 사명을 이루어 내고, 역사에 이름들을 남겼다. 죽음의 땅이라 불릴 만큼 척박한 땅에서 훈련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곳이 바로 광야다. 하나님은 40년간 광야에서 "종의근성"을 치료하신 후에 새로운 신앙정신과 역사의식으로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셨다. 

우리가 1945년 해방하고 1948년 건국한 후에 곧바로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에 이르지 못하고, 지난 반백년을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온갖 훈련을 받아 오늘에 이른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은 광야교회 훈련이 오늘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광야란 어떤 곳인가? 미국의 구약신학자 브르그맨(W. Brueggemann)교수는 광야를 ‘아무것도 없음의 자리’(Nothinglessness)라고 표현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밤에는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곳에 들짐승들이 먹잇감을 찾아 쏘다니고, 불 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는 곳이 광야이다.

광야란 말의 히브리어는 "미드바르(MIDBAAR)" 이고, 미드바르의 동사형 다바르(DABAAR)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는 의미이며, "청종한다."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광야는 의지할 것도, 즐길 것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에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곳이다. 따라서 광야의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이다.

광야 즉 “미드바르” 에서 나온 말로 “드바르(DBAAR)”가 있다. 곧 성막(聖幕)의 지성소(至聖所)를 일컫는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중심에 성막을 모시고 살았다. 하나님이 임재의 처소요, 하나님과 대화하는 곳이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그 성막의 가장 중심에 지성소가 위치한다. 광야를 뜻하는 미드바르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다바르와 지성소를 뜻하는 드바르가 모두 한 단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혹독한 ‘바이러스코로나19’의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는 여호와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통치를 바라던 이스라엘의 광야교회처럼 훈련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섭리아래서 어찌하고들 있는가.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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