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한 필

당신한테 오간 길 감으면
비단 한 필은 족히 나올 터.

이젠 슬며시 
손을 놓으셔도…

내 머리 위 오리나무 하늘에
마구 길을 내는 새를 따라가셔도…

가시는 숲 어디인지
주소 주지 않으셔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저녁놀 바라보는 하늘은 하나

이 비단 한 필이며 어느 마을 살아도 마음거지는 면할 터.

비단 올올이 풀리는 추억만 감아도
이생에서는 다 감지 못할 터.


 - 『기독시문학』 21년도 하반기호에서

* 감태준 시인: 1972 [월간문학] 등단 《시와함께》 편집인. 《현대문학》 주간 역임. 중앙대학교 문창과 전 교수. 
시집: <몸 바뀐 사람들> <마음이 불어가는 쪽> <마음의 집 한 채> <사람의 집> 등 
수상: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윤동주문학상. 기독시문학상. 중앙대문학상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이 작품은 비단 한 필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실존의식을 날줄과 씨줄로 만들어진 비단이라는 옷감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인생 자체를 아름다움의 소재인 비단으로 본다는 점에서 존재 자체 의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도 알게 해준다. 미래지향적인 역사관까지 함축한 시적 언어다. 즉 실존인식과 가치를 미학적으로 심도 깊게 새기고 있다. 

이 점은 하이데거의 『시간과 존재』에서 말하는 실존주의자들의 현존(Da Sein) 인식 즉 허무와 염세적 사고와 다른 인생관을 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종교적 담론을 엿볼 수 있다.

저녁이라는 종말론적 인식과 비단이라는 과거 이미지의 상반성을 융합한 컨시트(기발한 착상)는 미학적 감명을 확장시켜 준다. 언어예술인 시에서 노리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슬며시 손을 놓으셔도’라는 별리를 나타내는 표현 속에도 삶의 가치와 소망을 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비단 한 필’로 그리고 있는 삶의 의미를 화자는 ‘슬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인생은 가로 세로로 짜여진 비단과 같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우주 존재가 서로 엮어 만들어지는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함이다.

이 작품 속의 비단에 담긴 인식을 신앙으로 확장하여 상상한다면,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8) ’의 현대적 해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인생의 최고 가치를 비단이라는 사물로 변용한 점에서 신의 위치로 치환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독시는 천상적 이미지를 삶의 현장인 지상적 이미지로 변용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 면에서 ‘비단 한 필’은 앞의 정의를 명확하게 만족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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