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사순절이 시작했다. 예수의 삶과 죽음, 인간의 삶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사순절을 보내면서, 부활의 아침, 새로운 삶을 열어야 한다. 오늘 세계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예수님의 평화, 샬롬을 담보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서 유럽의 국가들이 하나가 되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마디로 경이롭다. 세계 모든 민족이 여기에 감동을 받는다. 분명한 것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평화는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본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조국은 정치인과 기득권자들의 악행이 극에 달했다. 이스라엘 조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다. 그러면서 기득권자와 정치인들은 금식의 규례를 지킨다고 말하며, 거만하기 그지없다. 이들에게서 정의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다. 예언자의 눈에는 금식한다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외면하는 기득권자, 정치지도자들이 역겨웠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중략)/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이사야 58장 4-9절)

성경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누구든지 가다가 멈추면, 드디어 보인다. 이사야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함께 고쳐 나가야 한다. 이럴 때 치유 중인 상처가 치유되고, 억울함에 처한 이웃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있다. 우리는 고난당하는 이웃의 손을 먼저 잡아주고,  찾아가야 한다.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은 오늘도, 찰라의 순간에도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려고 하는 금식기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순절을 맞아 금식한다고 자랑하는 이들이 오늘도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몇 번 금식했다고 자랑하는 목회자와 교인들도 적지 않다. 특히 부흥사들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내세울 것이 없어 “40일 금식을 수 십번 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자랑하듯이 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금식한 금식미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내놓는 것도 아니다. 행동하지 않는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이며, 위선이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닫자.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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