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머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한 뿔을 맞대며 툭,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에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중에 있습니다.

문 현 미 교수
문 현 미 교수

서로 다투거나 싸운다는 뜻인 단어‘각축’을 시의 제목으로 정한 것이 눈길을 끈다. 덕분에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단어에 대하여 묵상해 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싸우며 살고 있는가. 연일 쏟아지는 보도를 접하면서 슬그머니 짜증이 날 때가 적지 않다. 가끔은 거기에 무뎌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뜻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나를 돌아보면 그리 화를 내며 싸우지 않게 된다. 그대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그대가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만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장날’이라는 시어를 읽으며 시골 장터로 마음의 길을 따라가 본다. 아주 먼 옛날 외갓집에 갔을 때 그때의 장날 풍경이 떠 오른다. 엿장수의 신나는 엿가위 소리와 함께 시끌벅쩍한 분위기가 기분을 한껏 들뜨게 했다. 거기엔 여러 가지 먹거리들과 끈에 묶인 개, 닭, 토끼, 염소들도 있었다. 

시인의 눈이 팔려나온 어미 염소와 새끼들에게 붙들려 있다.“젖을 뗀 것 같은 어미”가 말뚝에 묶여 있는 모습과“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이 어미 반경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대비된다. 어린 새끼들이 얼마나 철부지인지 다음 행에서 잘 표현된다. 서로 뿔을 맞대며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여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장날 풍경이다.“2월, 상사화 잎싹만한 뿔”이라는 참신한 비유를 통해 시의 묘미가 한껏 살아난다. 시의 말미에 어린 새끼들이 각축하는 이유가 나중에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시선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시인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무딘 감각에 새싹이 움트는 듯하다. 싸워도 이런 싸움은 자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봄, 누군가로 인해 돋은 뿔이 있다면 부디 부드러워지시기를...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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