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항간에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 구약과 신약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난무하여 아예 경전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의 정체성도 함께 도마 위에 올려 진위에 대한 논쟁을 유도하는 저서들이 등장하는 중이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진위의 논쟁은 기독교의 뿌리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므로 누구나 함부로 재단하거나 결론을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염려스럽다.  

아브라함의 갈대아 우르에서의 이주, 바벨론 유수 이후의 강제 이주와 서기 70년의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의 멸망과 강제 추방등등이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고(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김승완, 사월의 책 2022년)하는 성경 일부 내용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은 기독교 전통 신앙에 대한 태클이며,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흐름에 대한 부정으로 성경 이해에 대한 의문을 던져 기독교 신앙의 믿음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역사연구 원인으로 인해 유대인이 만들어졌다면 오늘의 기독교도들의 정체성에 대한 진위는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연구는 어디까지나 연구로 남아야지 이를 계기로 기독교의 믿음의 전통을 기초부터 흔들어놓으려는 저자의 의도는 진정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수천 년이 지난 현재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 오류나 연구의 오해로 인한 성경의 내용이 주변 사회 역사와의 비교로 인해 역사적 부정과 오해라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66권 신구약 성경으로부터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진리로 믿어와 신앙으로 자리 잡은 성경의 계시를 밑 뿌리부터 뽑는 연구를 어디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복잡하다.        

이러한 논리와 연구들이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회가 세상에 주는 영적인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은 아닌지? 아니면 교회가 성경에 계시가 대 사회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교회의 하는 일이 세속의 일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동일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또한 사회가 교회를 필요로 느끼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서 기독교회의 유통기간 만료로 용도 폐기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교회는 영적인 신령함과 거룩함에 대한 회복을 위해 세속적인 것들을 걸러내고 사회인들보다 좀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동정심과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히려 기독교도들도 세속적인 종교인들처럼 종교에 필요한 건물을 겉보기에 화려함과 사치한 내부 장식 구비를 위해 헌금 사용이 남용되고 있음이 사회인들의 생각에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만큼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의 의식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를 영혼과 생명 구원에 있지 않고 잘 지어 놓은 건물과 수많은 신자의 출입과 조성한 막대한 헌금비축에 눈높이로 기독교를 세상 종교의 대열에 진열해놓았기에 사회인들의 조롱을 받아 선교와 전도의 길을 막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처럼 세속화된 기독교의 속된 정체성을 이제 성경이 계시한 본래 정체성으로 회복되게 하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부터 바로 세워야 하는가? 기독교 지도자와 신자 모두 의식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선교 이후 현재까지 성장과 부흥의 주제는 바로 축복이었다. 물론 영적인 축복도 포함되었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과 입신양명과 무병장수가 우선으로 하는 축복론이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한 지도자들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제일 먼저 들고나오는 슬로건을 최고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계획을 교회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러면 신도들은 자연적으로 빈자리를 메꾸게 된다는 지론을 폈다.

세속적으로 부자교회가 목적이던 것을 바꾸어 이제는 예수님이 동거숙 서가숙 하시면서 오직 복음을 선포하신 것처럼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이상인 복음의 순수성이 영과 혼과 몸으로 전해지도록 함이 중요한 과제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도자들은 명예를 부인하고, 신자들은 유명세를 쫓아 중대형교회를 선호하던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작은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하고, 교회의 물질은 진실로 성경에 계시된 초대교회처럼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일에 사용되도록 함이 중요하다.    

그리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교단이 중요시되고 교파가 우선시되는 편당과 파당을 짓는 분파주의 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기를힘써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한다. 어찌 보면 재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도 교회는 분파와 편당을 위해 교회의 힘을 허비하지 않을지 의문이다. 교회의 새로운 동력은 역시 초대교회로의 환원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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