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교수
5. 교회의 정체성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왜곡하는 다른 소리들을 듣지 말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 11:6)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 (요 3:36, 5:24, 6:47).

기독교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와 화해와 회복이다. 기독교 신학은 어렵고 복잡한 학문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로 개혁신학이 복구하려 했던 것도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무슨 학당이나 학파를 세운 게 아니다. 토라에 의존하여 온 유대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제도와 조직으로 인간이 행복을 얻고 죄를 씻는 길을 가도록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지난 2천년 동안 서구 유럽이 주도한 기독교의 세계는 자꾸만 어려운 신학화 작업에만 몰두해 왔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해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인간의 본분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이해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와 회복을 구체화하는 모든 실행들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언어를 사용해서 말씀하시고, 최종 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을 이루시고자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요 1:1,14).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으로서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소통을 하셨다.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회복된 형상을 보여주시고 드러내셨기에 기쁜 소식, 복된 말씀으로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주어졌다 (골 1:15).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녹여져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녹여진 성경으로 인간의 언어화가 이루어졌다 (딤후 3:16).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성경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은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고전 15:58).

6. 교회론의 대변혁과 선교학의 도전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이 교회론의 대변혁을 일으켰다.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로마 가톨릭과 다른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것은 성경적인 구원론, 교회론, 직분론, 성례론 등에 연계된 진리들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개혁신학은 언약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속역사적인 접근방법으로 정립해나갔고, 점차 각성운동과 부흥과 갱신을 주도하였다. 개혁주의 교회들이 국내전도와 세계 선교를 향해서 헌신하고, 선교적인 신학을 세우는 과정은 세계화로부터 도전과 요청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서구 유럽 개신교 교회가 19세기까지 선교사역을 감당해 왔는데, 개신교 신학전체를 선교사역 위주로, 선교를 위한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다음과 같은 대담한 선언이 나오면서 다시한번 개신교 교회론의 재구성이 시도되었다.    

“선교사역은 그저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 하나로 취급될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의 행사들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동안 너무나 개인중심의 구원론과 자체 교회 중심의 교회론이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서구 교회가 그동안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무시하고 간과했다는 지적에 동감하는 사람들은 특히 교회의 주요기능을 성도들의 교제와 하나님 나라로서의 사역에만 집중하여 예정론과 같은 일부 교리를 중요시하면서 선교에 소홀했다고 비판하였다. 신학과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존재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강화되었다.

그동안 선교는 신학의 핵심 가치와 원리에서 제외된 측면이 많았다. 선교학자들의 학문이었지, 조직신학이나 성경신학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지를 못하였다. 교회와 선교와의 사이에 긴밀한 관련성이 있지만, 그래서 교회론을 다루는 부분에서 선교가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하지만, 조직신학이나 성경신학, 특히 신약신학에서 그리 핵심가치로 다루지 않았었다.

그러나 조직신학이나 전통적인 교회론을 비판하던 18세기 서구 유럽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아예 선교를 거론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앞장서서 열심히 실천하지도 않았다. 성경적인 신학을 구축하려 하기 보다는 인본주의적이며 인간 자율주의에 입각하여 철학적인 사색과 미세한 분석에 흐르고 말았다. 지금도 다른 나라와 열방, 이방인들의 영혼에 대한 걱정과 기도가 논의되지 않는 경향은 현저하다. 특히 조직신학과 성경신학과 같은 핵심적인 신학의 교과서들을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스콜라주의에 빠진 이론신학과 추상적인 개념을 중시하는 개념주의자들의 사상에는 구체적으로 담당해야하는 선교가 완전히 빠져있다.

선교적인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역을 감당했던 요나단 에드워즈 (1703-1758)는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주도하면서, 성령의 회개와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알미니안주의와 맞서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주어지는 감동, 개혁주의 신학을 확고하게 지켜나갔다.

에드워즈는 미국 신대륙 원주민 선교에 헌신하였던 칼빈주의자였다. 죠지 휫필드, 길버트 테넌트 등과 함께 근대 교회사에 새로운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21세기가 도래하면서, 다시금 선교가 모든 신학을 지배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성경신학이나 신약신학, 구약신학처럼, 실천신학에서 따로 완전히 독립하여 선교적인 모델로 새신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외침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선교중심의 관점으로 재편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신학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이론적인 신학과 실천적인 선교를 조화시키려는 매우 긍정적인 노력을 하는 시도가 선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더 이상 선교신학의 한계를 두지 않으려 하는 것이며, 타지역에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중심신학으로 옮겨서 도전을 주려고 시도하였다. 조직신학을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비개혁주의 신학자들 모두로부터 제기되었다. 이런 선교중심적인 방법론적인 면에서 새로운 전제를 가지고 크게 영향을 미친 신학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메첸 박사와 하비 칸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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