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距離

창턱에는 두 개의 꽃병이 있었다
좋아하는 꽃이 서로 달랐다
서로 다른 길을 다녀 와
어떻게 같은 방향을 바라봤는지
답이 없는 시간은 멀리 강에 흘렀다
창을 열면 시야가 트일까
창턱에는 아직 두 개의 꽃병이 있다

-《시와함께》 2020년 봄호에서

* 서정혜 시인
《문예운동》 등단. 
시집 : 『봄은 비를 먹으며 온다』 『새벽투망』 『그곳에 가자』 『물푸레나무로 서다』, 영한번역시집 『여섯 개의 변주』(공저)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거리>란 기하학의 정의를 든다면 두 점 사이의 경로의 길이를 말한다. 그러나 기하학에서 말하는 점이란 실지로 존재하지 않고, 상상하는 위치만 있다는 것을 유클리드가 주장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점을 찍어 그것을 확대해보면 면적이 되기 때문에 선은 가상의 점(point)을 측정한 것이다. 일종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고 말해도 된다. 

이 작품 안에서도 거리는 존재의 위치를 상상(비유)으로 보여주고 있다. 두드러진 점은 거리로 내재된 진술은 단절이나 갈등의식으로 치환시키고 있음이다. 갈등도 사전적으로 살피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대립과 경쟁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은 각각의 점이며 그 사이를 거리라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갈등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뿐 아니라 집단에도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있고, 당연히 집단과 집단 사이에도 갈등이 있다. 작품속의 갈등은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본다. 창턱도 건물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에 있는 지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꽃병이란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자리다. 두 개의 꽃병에 있는 꽃들은 서로 다른 것일 수 있다. 모양도 향기도 다른 것들이 꽃병에 있지만, 꽃들의 시야는 동일한 방향이다. 목적론으로는 동일하다. 

강으로 흘러간 시간들이 만든 꽃으로 상징된 가치들, 그것이 아름다움의 대상일 수도 있으며 진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꽃은 절대적 가치의 통합성을 말하는 관념의 형상화 모습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은 목적은 같아도 욕구는 차이가 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갈등의 심리적 원인이며 목적임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꽃병의 위치는 인간의 존재 위치를 보여준다. 그것은 화자 자신이며 창턱은 화자의 존재위치다. 하늘과 땅, 창공과 지상으로 이분화 된 지점에 있는 실존의식 즉 현존은 늘 갈등 속에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존재’ 위치인 그곳(Da)이 바로 창턱이다.  ‘강처럼 흐른 시간들’에서 그 갈등은 시간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화자와 타인의 거리를 유추해본다면 신과 죄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먼 거리다. 그러나 인간은 꽃을 담으려 하는 선한 마음의 존재인 것을 꽃병으로 보여준다. 즉 꽃을 담으면 꽃병이고 술을 담으면 술병이듯 실존은 남의 손에 정해지는 운명적 존재다. 꽃병이란 단순한 사물의 해설이 아니라 존재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한 인간 본연의 심리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마음속에 숨겨진 원관념의 상상을 확대시켜 보조관념인 꽃병 사이 거리로 시적 형상화를 선명하게 이루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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