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부모의 사랑은 자녀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여는 열쇠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무조건적 애정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허용하는 지나친 자율로 인하여 자녀의 부당한 욕망이 자녀를 망치는 방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안 지거나, 혹은 책임질 능력이 없는 자녀가 지나친 자율을 행사하게 되면 경건한 청년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요즈음 일부 자녀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탕자가 되는 이유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지나친 자율 부여, 혹은 부모의 잘못된 사랑으로 자녀가 미성숙하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나친 자율로 방종이 심한 자녀는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품성에서 배우는 순종과 사랑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우선 언뜻 보이기에 자녀가 거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건강하게 변모해 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에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지나친 자율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자신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을 부모가 방치한다면, 그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부모로부터 대우을 받고, 달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그는 자신의 욕망과 의지가 충족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허용하게 되면 점점 더 자녀의 불순종은 증가하고, 부모의 행위는 사탄에게 협조하는 결과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사탄에게 지지 않도록 자녀와 함께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다음으로, 자녀의 지나친 자율이 가정의 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 자녀의 욕망을 방종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녀는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불만족한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심하면 특이한 행동이 나타나는 일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부당한 욕망을 만족시켜주면 장래에는 고귀한 품성을 훼손해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떼를 쓰거나 고집 피우는 것에 대하여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말이나 행동으로, 자녀의 욕망을 제지하려 하지 말고 거절의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조금씩 수정해가면 반드시 순종의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물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부모는 자녀의 죄를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신실한 친구나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죄를 지적받았을 때는 부모의 권리가 침해를 받았다거나 인신공격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같은 교인들의 말보다 자녀의 말을 더 신뢰한다고 말함으로써, 자녀들이 스스로 속이는 습관을 갖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자녀들이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파적인 교양을 받음으로 자기 잘못을 분별하지 못하는 품성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릇이 나쁜 자녀는 시련과 유혹을 당할 때 순종을 훈련받지 못해 잘못된 의지를 따라갈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좇아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은 그릇된 습관을 바로잡거나 억제받는 자신의 의지를 굴복시킬 도덕적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성년에 그의 슬픈 유산이 될 것입니다. 결국, 그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또, 부모가 고집 센 자녀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엘리사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벧엘의 청년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엘리사는 청년들을 심판하였습니다((왕하2:24). 그 후, 그는 악한 청년들의 무리를 통과하는 데 아무도 그를 조롱하거나 선지자로서 품위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같이하는 부모들과 자녀들이 함께 지내며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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