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매년 순서에 따라 사순절(40일)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주일이 쳇바퀴 돌 듯이 순서에 따라오며 웬만한 기독교 계통은 왁자지껄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하다. 사실 성경에는 부활절기를 중심으로 오는 여러 행사에 대한 연월일시에 대한 기록이 없다. 어떻게 보면 신앙과는 무관하게 날자가 다가오니 그날 들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 같은 모양새다. 사실 교회력이란? 종교개혁 전 천주교에서 제정하여 교회 운영을 위한 제도를 개신교에서 몇몇 교단들이 차용해 사용한 후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모든 교파와 교단에서 사용하면서 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정착했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대외적으로 기독교의 특징을 눈으로 보여줌을 통해 선교와 전도에 일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는 신앙 특성상 행사 위주의 보여주는 형식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거듭남과 영혼과 생명 구원이 더 중요하다. 인간 세상에 보여주는 형식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 내면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죄의 용서와 이웃사랑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진리를 확실하게 믿어 형식적이고 행사적인 모습을 떠나 실제 신앙적으로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지금 세계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며 누구도 인간의 운명 또한 보장할 수 없다. 러시아 정교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엄연히 존재하는 러시아는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을 뿐 아니라 군사적인 도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애꿋은 민간인 부녀자 심지어 어린아이에게까지 무차별 사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한 기독교가 나라나 사회에 주는 역할이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항간의 소문은 전쟁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종교인 기독교의 영적인 힘이 얼마나 약하였으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전쟁 종결을 위한 출구를 찾지 못해 결국 전술핵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다. 이러한 세계의 불운한 상황을 맞이한 기독교의 대처는 감감 무소식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리고 전전긍긍하는 서구 유럽은 공산 권이나 자유진영 모두 기독교 문화의 역사를 오래전부터 가진 종교적인 환경을 가진 나라들이다. 문제는 신앙을 공유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한 감정을 보여 주고 있는듯 하여 매우 안타까운 모습이다.

역사의 증언을 보면 전쟁을 치르더라도 기독교 문화를 공유한 전쟁 당사국들은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오면 서로 휴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는 전쟁의 욕구보다는 신에 대한 두려움과 신앙에 대한 경건함을 잃지 않으려는 신앙의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서로의 적대국의 군인들이 부상하였거나 사망한 경우 그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돌보아주는 적십자가가 창설되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침공자들이 더 많은 희생자를 내었어도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적십자의 활동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침략군들이 무차별 폭격을 통해 제노사이드를 전재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의 이어온 기독교 문화가 휴지통에 버려진 형편이며 기독교의 사랑의 진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이다.    사순절,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절이 명목상 기독교도가 행사 위주로 지켜온 속된 명절로 치부된다면 이는 신을 부정하는 결론이며, 기독교 문화는 그냥 인간들이 기념하는 종교 명절일 뿐이다. 성경은 사순절,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절에 대해 일체 주석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제도화한 종교인들이 편의상 기획한 단순 명절에 불과하지 않은지?    

현재 기독교 신자에게 주는 성경의 교훈은 형식적이고 바리새적인 부분을 용납하지 않는다.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권력층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라는 종교정치인들에 대해 혹독한 비판과 함께 저주를 통해 성경은 형식적이고 행사적으로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것을 배척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독교는 절기에 대해 겉으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기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지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 감정을 지울 수 없다. 교세가 클수록 교단의 장들은 은근히 교단의 위세와 개인의 역량을 들어내기 위해 절기의 중요한 순서를 장악하는데 세력을 앞세운다. 심지어 절기 행사의 중요한 자리를 맡지 못하면 아예 행사의 협조나 후원을 등한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으로 기리는 것보다는 개인의 체면과 위상을 위하는 지도자들이 있음이 애석하다. 부활절기를 앞두고 사순절 종려주일 고난주간 와중에 오순절 계통이 또 협의체를 구성하였다는 소식 좋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지 분간할 수 없다. 연합모임이 하나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데 유사 계통의 끼리 연합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지 않은가? 또 슬픈 부활절이 되나? 하나는 도저히 될 수 없는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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