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19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19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삶서 이탈한 인간

인간 모두는 자기 안에 중심을 두고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살도록 창조되었다. 헌데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은 자기 안에 중심을 두고, 자기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 모두가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인간들은 성서에서 이탈한 설교에, 행동하지 않는 설교에, 십자가의 고난을 몰각하고, 축복만을 강조하는 설교에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한다.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한다면서도, 십자가의 고난에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갇혀 절제되지 않은 삶, 겸손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참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현한 하나님의 참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 나라, 하나님의 아가페가 지배하는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의 핵심은 기쁜 소식이다. 사순절 모두가 절제된 삶 속에서 겸손하게 생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교회의 지도자라는 목회자들은 호화로운 호텔 등에서 모임을 갖는 등 예수님의 삶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거룩하다고 말한다.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한다.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바리새인, 정치지도자들과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을 팔아 장사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른다. 이들은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른다. 세상의 어떤 혁명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사랑 없이 완성될 수 없다는 성서의 진리를 몰각했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이념과 갈등을 넘어 그리스도의 참사랑 안에서 평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 특히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민족분열과 교회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 하나님나라가 열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복음의 핵심은 아가페사랑이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으로 가득 찬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존속하는 한 하나님나라는 실현될 수 없다.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사순절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해야 할 일이다. 모두가 자기중심에서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한,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신종바이러스전염병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당하는 세계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중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의 참사랑(복음)을 실현해야 할 교회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살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노동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숙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세계민족을 외면한다. 말로만 사순절을 경건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겠다고 떠든다. 즉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행동하지 않는 믿음이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 모두가 마음이 닫혀 있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너를 통해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망각했다. 관계는 서로 자신을 열 때 성립된다. 서로 자신을 여는 행위는 사랑이다. 나를 너에게 내주는 행위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거는 용기이며, 모험이다. 나의 존재를 걸고 살 때만이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헌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삶의 기쁨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 모두는 죽음의 역사, 악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코로나19는 세계민족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한민국은 잘 대처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감염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평화를 깨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가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전쟁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사람도 헤아릴 수 없다. 러시아군은 40년 전에 원전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에 진지를 구축했다. 방사능 오염이 노출되면서 러시아 젊은 군인은 혼비백산했다. 푸틴의 전쟁 광기는 여기까지 왔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에 문제가 없다며,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이미 이웃나라 몰래 버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와 친일적인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원전폐기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보전을 말한다. 모두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편리에 따라 하나님을 악용한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참사랑을 실현할 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성경의 진리를 망각했다. 성경은, 인생의 참 목적은 사랑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모두는 자기 안에 갇혀 사는 삶은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웃의 아픔을 모르고,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오늘날 모든 악의 근원은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이탈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절제된 삶을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전혀 없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교육했다. 나 자신을 부인하는 실존적 행위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에게 복음(하나님나라=기쁜소식)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자리, 처형의 자리에서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며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했다. 이 절규는 역사와 사회를 지배하는 죽음의 세력에 대한 항거이며, 부르짖음이다. 그것은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사랑과 생명을 주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이며, 호소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열어 가는 우리를 향한 절규이며, 호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에로 나갈 때 우리에게 해방과 구원의 길이 열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규와 외침을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구원도, 해방도, 새 삶도, 새로운 나라도, 새로운 미래도, 하나님나라도 없다. 이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진 인간이다.

사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길, 경건하고, 겸손하게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해방과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의 진리를 망각하고, 율법학자, 대제사장, 바리세인, 정치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서,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있었던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이용하기에 바빴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서 크게 노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중략)/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공동번역 성서 마태복음 2313-22)

예수님도 수시로 분노하셨다.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철저하게 악용했다. 한마디로 외식하는 자이며, 위선자였다. 폭력을 일삼았다. 약한 사람을 희생재물로 삼았다. 악행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죄를 남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자기 변명하기에 바빴다. 이들은 악을 분별 할 줄을 몰랐다. 편 가르기에 앞장섰다. 바리새파는 사두개인과 손을 잡고 뒷거래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다.

여기에 예수님이 분노한 것이다. 누구나 불의에 집착하면, 자신의 잘못이 보이지를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평화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로마 팍스, 러시아 팍스, 자이나 팍스, 아메리카 팍스를 찬양한다. 힘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평화, 샬롬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는 예수님의 샬롬을 말하는 것 같지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가 보면, 목회자와 교인들은 힘에 의한 평화를 노래하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외면한다.

오늘 세계는 힘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평화가 깨지고 있다. 지도자를 잘못만나 국민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 사순절,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예수님의 참사랑과 참 평화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으로 세계민족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민족은 어려움에 처했다.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민족,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 그러나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귀가 막혀 이들의 호소를 듣지 못한다. 이들의 호소가 하늘의 호소라는 것을 잊었다. 오히려 전쟁을 부추긴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했다. 바이든의 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러시아가 알아서 우크라이나를 요리하라는 말로 들린다. 이것은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전염병과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세계민족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세계민족은 거짓선지자의 달콤한 말, 희망의 말만 듣기를 원한다. 세상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들은 율법학자, 바리새인과 같다. 세상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안에 갇혀 불우한 이웃을 보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는다.

분별력 없이 산다는 것처럼 우매한 일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들의 안보 공백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 용산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데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을 쏟아낸다. 문재인 대통령을 안보무능력자라고 말한다. YTN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때마다 강력히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모두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서라(회개)

국가안보는 시스템으로 한다. 국가안보의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국방부는 중추적인 기능을 감당한다. 청와대는 암호시스템을 수십 년에 거쳐서 갖추었다. 국방부 옆에는 미군기지가 있다. 한미합동사령부도 있다. 130년 동안 외국군이 점령·주둔한 용산 기지는 환경영향평가도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미군기지 20%정도 한국정부에 반환했다. 80%는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땅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한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국민들은 비판한다. 청와대를 혐오시설로 매도하는 등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진영논리에 갇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도의 폐해인 제도개혁을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문재인 정부가 직접 쓰지 않았는가.

대통령은 국가를 관리하는 지도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측이 북한 선제공격을 말한 이후, 북한의 도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보수적인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경제와 안보, 외교를 망쳤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지난 5년 동안 국민들은 전쟁위험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은 5년 동안 국가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제라도 정치지도자, 교회지도자, 국민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회개는 자기방어기제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하나님께 노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인간은 자기결핍에 빠져있다. 부끄러운 일들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두 가기 안에 갇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

인간은 항상 칭찬 위에 서 있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김모 목사는 전 대통령을 위해 특별집회를 가지면서, “예수님도 죄 없이 고난 당하셨다고 말하며, 위로했다고 한다. 김모 목사는 세상의 위선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약자, 강한 자에 의해서 핍박당하는 약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회 한번 열지 않았다. 이들은 성품은 온화하다. 항상 진실하다. 김모 목사는 군사독재정권을 비롯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역했다. 피 묻은 손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 주었다.

위선적인 율법학자는 되지 말자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마디로 한심하다.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른다. 친일사관에서 국정교과를 만든 인간을 중용하는가 하면, 철학자 김모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향해 이재명 후보가 자기 집을 찾아 온 것은 하늘이 점지해 준 것이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문재인은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굿을 하는 사람이 말하듯이 하는 이들은 모두 지식인이다.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이들을 향해 이사야는 말한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1)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이사야 308-14)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고 한다. 유익한 말을 그만 하라고 한다. 간사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에게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도망 갈 인간들이다. 이들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국가가 무너진다. 인간은 무섭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 지식인들이 무너지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똑똑히 보았다.

성서 요한계시록 3장은 이들을 향해 생각하라. 깨어라.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며, 참 그리스도인이다. 사순절,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중단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처럼 위선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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