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먼저 있은 후에 일어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부활은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신 진실함을 부활을 통해 나타나 내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독생자를 죄인 대신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의 증표다. 부활절에 기독교 신자들이 보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우선이다. 거룩하게 드리는 예배 행사로 끝이 난다면 부활절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 먼저임을 교회와 신자들의 깨달음이 중요하다. 

부활은 사순절에 이어 종려주일과 더불어 고난주간을 거처 부활주일에 정점을 이룬다.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사순절과 종려주일 그리고 고난주간을 기획해 기독교의 정체성 중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 이천 년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생명의 종교로 거듭났으며 구원받은 영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수의 종교들이 있다. 저마다 자신들의 종교가 제일이며 특징을 자랑하고 있다. 

세속종교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 무엇인가 사람들의 안목에 따른 인식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종교의 근거를 경전보다 건물에 두게 된다. 동남아의 대부분 나라는 불교가 국교로 아니면 문화의 중요한 근원을 삼고 있다. 신자들의 의지나 생각을 지배하기 위해서 종교 건물인 사찰이나 사당 아니면 경배의 대상을 사람의 모양이나 사람과 가까운 동물의 모양을 만들어 섬긴다. 사람들이 만든 공예물에 더 귀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인 금으로 칠하거나 금을 쳐서 늘린 금 종이로 섬기는 불상이나 장군상이나 동물의 모양의 겉면에 붙이면서 공력과 종교심을 나타낸다. 

또한 종교의 중요한 지도자인 교주나 인물이 죽었을 경우 묘지를 웅장하게 건축하여 신도들의 성지순례 시 참배토록 한다.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사우디의 메카를 들 수 있으며, 기독교 내에서도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이나 터키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 등은 종교를 나타내기 위한 세속적인 신앙의 위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들이다. 이는 사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해야 함에도 종교를 유지하고 사람들에게 종교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보이는 건물의 위용을 통해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물론 그렇게 운영하는 종교단체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실지 의문이다.

어떻게 보면 종교의 진실성과 신의 능력을 가장 하기 위해 행사를 눈에 보이도록 진행하는 것은 바리새적 요소가 다분하다. 바리새인들은 제사장 복장과 당파의 복장을 거룩하게 꾸며 입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십의 일조를 정확하게 드렸지만, 이 모든 일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꾸짖으셨다. 믿음과 신앙은 어떤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므로 되는 것보다는 신앙의 진정성이 있느냐가 중요함을 성경은 계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부활절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보이지 않는 영혼이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그런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활의 은혜에 대해 영광을 드려야 한다. 부활을 기억하고 영광을 드리는 신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속죄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영적인 소임이 있음을 잊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면 부활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행사 위주의 부활절 예배 행사는 그 의미를 살리고 규모는 축소하여 과시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다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부활절에 드린 헌금은 현재도 어려움이 닥친 이웃과 작은 교회와 제삼세계의 고통당하는 자들과 전쟁으로 고국을 떠나 유랑하는 애처로운 난민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한국교회가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체 행사에 드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함이 바른 선택이다. 금년 부활절 행사는 잘 지어 놓은 교회에서 사치한 용품을 구입하고 모인 신자들이 자신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함이 어떤가? 지금 세계는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유민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곧 우리들의 이웃이며 강도 만난 자이며 도와야 할 대상자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공산 세력에 의한 제노사이드로 죽음에 처한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안겨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실천 아닌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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