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출애굽기 19-24장은 십계명을 비롯한 계약법을 포함하고 있다. 앞 단원 1-18장의 이집트 탈출과 뒤따르는 단락 26-40장의 성막 건축을 통한 규칙적인 예배의식의 제정을 앞뒤로 연결하는 고리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 가운데 놓인 이 문단의 신학적 의미가 궁금해진다. 출 19-24장의 주제는 시내산 현현과 계시이다. 대부분 출애굽기 전체의 구성과 신학적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이 단락의 1-2절을 단순히 도입부로만 여기고 여기에 포함된 요점을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가 1절에서 ‘이 날’을 강조하여 계시의 현재성을 강조한다면 2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내적 단합과 하나로 일치된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려진 대로 출 19-24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맺는 상황과 내용을 전한다. 특히 19장 1-2절은 그간의 출애굽 경과를 매우 짧게 묘사하지만 출 19-24장의 계명과 계시에 결코 가려지지 않는 중요 사항을 다루고 있다. 이미 1절에서 계시의 순간을 현재로 명시하였듯 2절에는 또 다른 요소를 배치한다. 즉 1-2절의 흐름은 계속되기 때문에 연결해서 살펴보면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복수 형태로 언급되고 2절에서도 계속 주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2절 마지막 문장 ‘시내산 거기 산 앞에 천막을 쳤다’에서는 주어가 갑자기 단수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다. 

<미드라시>는 두 구절에서 주어가 3인칭 복수 ‘이스라엘 자손들’로 쓰이다가 마지막에서 단수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을 주목한다.<Plaut, 528>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를 떠날 때, 시내 광야에 당도했을 때, 다시 르비딤을 떠날 때,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장막을 칠 때까지 줄곧 주어가 동일하게 남성 복수형으로 쓰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산 ‘거기’에 장막을 칠 때  주어는 단수 ‘이스라엘’로 표기된다. 과연 ‘이스라엘 자손’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랍비들의 해석은 이렇듯 눈에 확 띄지 않지만 미세한 차이를 명확히 읽어내는 데서 빛난다. 세 가지 견해로 압축된다. ① 수많은 잡족들이 계시 앞에서 각각 분리되었다(Nachmanides), ②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킨다(Ibn Ezra), ③ 이스라엘 백성의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의미한다(Rashi). ①은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강조하지만 출애굽 공동체의 결속을 놓치고, ②는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중간 대표들을 드러내는 설명이나 ‘장로들’을 위한 독립된 천막의 설치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라시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집트 제국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탈출을 감행한 ‘이스라엘 자손’은 태생적으로 일사분란한 지휘계통으로 통제될 수 없었다. 그들의 인적 구성이 ‘수많은 잡족’이 아니던가(출 12:38)?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제국의 영토를 벗어났지만 막상 그들의 여정은 녹녹치 않았다. 더구나 오랜 압제로 인한 자유에 대한 동경이 큰 만큼 모세의 지도력에 순순히 응하기 어려웠다. 뛰어난 통솔력과 내부적인 연대감 없이 그들의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렇듯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여정이었지만 상호신뢰와 결속력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바로의 장자가 죽은 후(출 12:29) 이스라엘 자손은 부푼 희망으로 라암셋을 떠났다(37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광야로 나아가던 중 그들은 바로에게 쫓기고 홍해를 건너며(14:22) 모세를 믿고 따르기 시작한다. 마라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15:23), 신 광야에서 굶어죽게 되었다고 원망할 때(17:18) 단물과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채우는 동안 하나님에 대한 의지와 내적인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16:16). 한편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투는 외적으로 이스라엘을 한층 더 결속시켜주었다. 여기에 미디안 사제 이드로의 조언은(18:25) 이스라엘의 지휘체계를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촘촘한 유대감을 갖는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르비딤에서 시내 광야에 이르는’ 동안 ‘이스라엘 자손’에서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 이집트 탈출 이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좌충우돌 부딪히고 원망하던 ‘수많은 잡족’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를 떠난 지 삼 개월이 된 지금 ‘이스라엘’이 되었다. 사분오열 제각각이던 출애굽 무리가 점차 하나의 이스라엘,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한 마음 한 뜻, 단수로 표기된 ‘이스라엘’로 거듭난다. 이집트를 떠난 석 달 동안 이스라엘은 ‘한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산 앞에 장막을 친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순간을 기다리시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토라를 계시하신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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