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기독교 절기 중에서 가장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절기다. 성탄절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라면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부활절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 생명을 주신 날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부활절이 한국교회에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처음 복음을 들고 들어온 미국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45일 바로 부활주일 아침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바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137년이 지난 올해 부활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37년 전 조선은 가난과 무지, 병마에 신음하며 일제의 총칼 앞에 무기력하게 국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나 기적과 같이 선진 경제 대국을 이룩했다.

그때는 제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백성이 대부분인 문맹국에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나라가 선교사들의 교육과 전도로 학교와 병원, 교회가 세워지고 종교 중 기독교를 믿는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는 나라,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한국교회가 복음의 불모지에서 세계교회사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부흥과 성장을 이룬 것은 감사한 일이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3.1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주기철 목사 등 순교자를 배출한 한국교회가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1952년 고신, 1953년 기장에 이어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에서 통합과 합동이 분열한 사건은 한국교회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혹자는 교단이 나뉨으로써 전도의 열기가 확산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도 하나 교회의 분열을 그리스도 몸의 찢김으로 간주한 칼빈의 관점에서 볼 때 교단 분열은 그 어떤 기념비적 업적도 가릴 부끄러운 과오일 뿐이다.

그런 마음의 짐 때문인지 197446일 남산에서 첫 부활절 연합예배가 드려졌다. 한기총이 창립한 후 자연스럽게 진보, 보수가 따로 드리던 부활절 연합예배는 예배만큼은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가 되어 드려야 한다는 분위기에 맞춰 한때나마 한기총과 NCCK가 순서를 배분해 돌아가면서 주최하는 등 외형적으로나마 연합의 모양을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한기총이 한교연과 나뉘고 또다시 한교총으로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는 연합이 사라진 껍데기뿐인 연합예배로 자리를 굳혀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서로 참여 교단 수를 내세워 정통성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볼 때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도 크게 두 군데로 나뉘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겉으로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이나 한쪽은 한국교회 공교회의 연합을 상징하는 74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점, 다른 쪽은 한교연과 380개 교단이 참여한다는 것을 내세우는 등 은근히 세 대결을 과시하고 있다.

부활절의 의미는 나를 죽음에서 건지신 주님의 부활과 생명에 있지 예배에 참여하는 인원의 많고 적음이나 규모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함으로써 부활절을 의미와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는 건 유감이다. 지도자급 인사들의 마음속 들보때문에 부활연합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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