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죽음과 삶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죽은 자가 어떻게 부활하느냐(?)고 의문을 갖는다.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 속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신종바이러스감염증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대망한다.

성경대로 메시아는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다시 살아나셨다. 바울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사셨고, 그리스도로 죽으셨다”고 했다.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생략)/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부활의 삶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사신대로 살면,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처저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갈릴리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루살렘은 욕망과 탐욕이 만연한 곳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이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살며, 죽임을 당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 헌데 오늘날 교회는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곳에 교회를 세워 부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교회는 서로 갈등하며, 분열의 싹을 키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한다. 이들은 화평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교회는 가난한 자나, 부자들이나 함께 자유와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예수님의 길을 간다면, 예수님의 삶의 현장, 부활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를 듣자. 그리고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이들을 위한 설교를 하자. 최소한 장애인을 괴롭히는 목회자. 교인은 되지 말자.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길’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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