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 날이고, 8일은 어버이 날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고, 16일은 성년의 날이며,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가 가장 잘 실현되고, 아가페를 주고받는 교육현장이다. 이런 가정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돈의 가치가 최고인 시대가 되면서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가정은 더 이상 사랑을 주고 받는 참교육의 현장이 아니다.

돈의 가치가 최고인 시대가 되면서 부모가 자녀에 의해서 살해되고, 부모에 의해서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버림받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신종바이러스감염증으로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이혼하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버림받는 아이, 방치되는 아이들도 해를 거듭하면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떠나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맡겨지는 형국이 되었다. 갈수록 조손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보니 아이의 삶도, 어르신들의 삶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곤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5월 가정의 달, 가정 행복해야 할 아이들, 가장 대접받아야 할 어르신들의 현실은 마냥 녹록하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이고, 아이들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의 파라오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당한 부모를 생각하라는 뜻에서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이 주어졌다. 성경은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다고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돈이, (우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는 인간의 가치관이 크게 무너지고 있다. 가정의 중요성도 상실해 가고 있다.

현대사회는 어머니가 길쌈해서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주고, 아버지가 밭을 갈아 농사를 지어, 나무를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시대가 아니다. 현대가정은 과거와 같이 끈끈한 가족관계가 무너졌다. 더 이상 아가페를 실현하는 교육장소도 아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자녀의 출세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이다. 돈이 되면 남편을 살해하고,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의 욕정과 탐욕을 위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대이다.

특히 인간의 가치, 삶의 무게 중심을 돈에 두면서, 부모와 아이들은 가정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세상은 출세지향주의가 되면서, 세상은 반칙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오늘 새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의 부모찬스, 조국장관 자녀의 부모찬스는 출세지향주의, 인간의 가치관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잘못된 세상,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출세지향주의의 폐단은 이들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를 가장 잘 실현되고, 아가페를 주고받는 교육 현장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를 가장 잘 실현되고, 아가페를 주고받는 교육 현장이다.

성경,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가정 모델 제시
가정, 하나님이 준 가장 위대한 창조적 선물, 문화적 유산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가정의 모습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아빠찬스를 악용하는 인간들,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편법으로 만들어내는 인간들은 모두가 인간의 가치관의 중심을 돈에 둔 결과에서 왔고, 이로 인해 아가페를 실현해야 할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다. 또 이렇게 교육받은 인간들이 바로 편법을 동원해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만든다. 이들은 개방된 가정을 통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를 잃어버린 결과이다. 과거 어머니의 아가페로 교육하고 훈육했던 가정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성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가정, 새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공동번역 성경 요한복음 1925-27)

모든 어머니는 여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믿을만한 아가페이다. 변치 않는 위대한 사랑이다. 인류역사에서 여성은 위대한 역할을 했다. 생명의 실어 나르는 통로였다. 그래서 어머니를 사랑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품은 말 그대로 행복이며, 평화이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 모계사회에서는 지배와 수탈이 없었다, 평화의 시대였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등장하면서, 사회는 지배와 수탈이 시작됐다.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회가 됐다.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경쟁사회가 됐다. 어머니, 여성은 항상 밑바닥에서 궂은일과 힘든 일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특히 교회 내에서 기독여성의 위치는 궂은일과 심방이나 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여성목사·장로도 최근에 와서야 인정하기 시작했다. 여성 목회자들은 남성 목회자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으로 여겨왔다. 여성은 과거부터 가정을 가꾸고, 지키는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렸다. 세상이 죄악과 모순덩어리가 되면서, 인간들은 평화와 행복, 사랑을 가져다가 주는 어머니 된 세상을 갈망한다. 그래야만 가정도, 사회도, 교회도, 모든 공동체가 평화롭고 건강하다.

오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는 사회의 변화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국회도, 정부요직도, 기업의 CEO도 각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시대이다. 헌데 교회만큼은 아직까지 여성이 어머니 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성은 불결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여성안수를 받아드리지 않는 교단도 존재한다. 이런 교단은 뒤 떨어진 교단이며, 해마다 여성안수 헌의가 올라오지만 번번이 부결시킨다.

가치를 돈에 둔 결과 인간성 파괴

가정은 가장 위대한 문화적 산물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한마디로 생명을 실어 나르는 통로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위대한 창조적 선물이다. 그런 가정이 인간의 탐욕과 정욕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그래서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가정이 파괴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돈을 사랑한 나머지 이제 인간의 가치는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돈이다. 돈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

오늘 세계는 경제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과거에는 경제, 정치, 문화가 종교에 종속되어 있었다. 오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서는 종교, 문화, 정치 등 모든 것이 경제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금융이 최고인 시대이다. 돈을 위해서는 부모도, 자녀도, 필요 없다. 가정을 파괴하면서 돈을 위해 산다. 인간의 가치가 이제 윤리, 도덕, 종교가 아니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가족보다도 돈이 최고인 시대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가진 자들은 금융을 내세워 약자들을 괴롭힌다.

그렇다보니 돈 때문에 가정이 해체될 수밖에 없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가 돈 때문에 헤어진다. 돈 때문에 사랑해서 낳은 아이를 버린다. 방치한다. 이러한 현상은 가난한 나라보다도 선진국에서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오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것도,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돈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락한 종교는 이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오히려 종교도 타락해 헌금을 많이 내는 교인을 대접한다. 그것은 한국교회를 보면 극명해진다. 돈이 있어야 교회에 다닐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사실 한국교회는 돈이 있어야 장로도, 권사도, 안수집사도, 세습도 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교인 노릇도 할 수 없다.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하면서 어떤 목사는 헌금을 내지 않는 교인을 향해 이혼하라고 부추긴 일도 있었다. “이혼하고 위자료를 받아 하나님께 헌금하라고 한다. 이런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이런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교인들의 가정이 건강 할리 없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방황 할 수밖에 없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인간 모두는 이 상처가 이 되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종교 국가인 독일의 경우, 양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103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나머지 7명은 고아원이나, 한부모 밑에서 자란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선진국의 가정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한다. 대한민국 역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조부모 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6.25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를 위해서 문을 연 고아원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지는가 하면, 정인이와 같이 양부모에게 입양돼, 계모와 계부의 학대로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더 이상 가정의 토대가 아가페가 아니다. 가정의 토대가 새롭게 놓여 질 때가 왔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가정이 인류의 삶의 진정한 토대가 아님을 알았다.

여성, 이 땅의 모두의 어머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 자매, 어머니라고 했다.(마태복음 331-35)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떠났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함께 실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인간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어느 목사는 하나님나라운동을 위해서 결혼을 하고서도 부부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교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아이를 낳아 숨어서 기른다. 그리고 부인 모르게 호적에 올려놓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입양했다고 한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인간 자신이 신이 되어 하나님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십자가 사건은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놓았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버리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기 위해 나선 것은 본능적인 가족의 정만으로 하나님나라를 실현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해도, 혈육의 정으로 끝나면, 하나님나라를 오게 할 수 없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열 수 없다. 예수님은 생활을 통해서 새로운 어머니상, 새로운 가족관계를 교육한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한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은 어머니를 제자들에게 부탁했다. 십자가는 혈육에 의한 가족관계를 깨트리고, 새로운 가족관계를 수립한다.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은 서로 단절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그 아픔은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시 십자가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가족관계가 이루어진다.

보라 네 어머니이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5월 가정의 달, 우리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이 신이 되어버린 본능과 혈육에 의한 가족공동체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본능과 혈육에 의한 가족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요청되고 있다. 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실현된다. 새 시대를 열고 새 공동체를 실현하는 하나님나라운동에 동참 할 때 가정을 위한 새 토대가 주어진다.

도래하는 하나님나라 속에서 새 가족의 토대와 분명한 목적을 발견 할 때, 가족공동체는 건강해지고, 유진된다. 개방적인 가족공동체가 절실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서는 새 공동체를 열수 없다. 모두가 자기자식에게 쏟는 정성의 10%만이라도 고아와 과부, 장애인, 용산 천막촌에서 노숙하는 노숙자, 이민자,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민족에게 쏟아야 한다. 이 정도라도 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자기 가정을 열고, 섬김을,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섬겨야 한다.

보라, 네 어머니이다

이렇게 하는 아픔에는 고통이 따른다. 가정을 개방하는 아픔은 십자가에 이르는 아픔이다. 구원에 이르는 아픔이다. 이것이 예수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다. 돈이 최고인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다. 모두가 여기에서 이탈해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지 않고, 세상의 길, 죄악의 길로 가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모두의 어머니이다. 이 땅의 남성은 모두의 아버지이다. 천국의 주인인 이 땅의 아이는 모두의 아이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나라 실현의 기초이다. 젊은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생명을 실어 나르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다. 노동현장에서 죽임당하는 사람 없이, 버림받는 아이들이 없이, 전쟁으로 인해 죽임당하는 사람 없이, 하나님의 창조적 모습대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나라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개방된 그리스도인의 가족공동체이다.

그래서 인간 모두는 더불어 사는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 자식 없이 외로운 여인, 의탁할 곳 없는 어르신에게 보라! 네 어머니이다란 말은 기쁜소식, 복음이다. 하나님의 아가페이다. 가정과 국가에 의해서 버려진 아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아이에게 보라! 네 어머니이다란 말도 기쁜소식, 복음이다.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는 십자가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자. 모두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이것은 모리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아이를 돌보고, 장박아를 위해서 신명 바치는 삶이 있다. 장애인들을 괴롭히지 않고, 이들의 인권을 위해서 목숨 바치는 삶,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위해서 일하는 이웃, 이방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변호사 등이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이 역사에 희망이 있다는 표징이다. 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이 동터온다. 하나님나라의 빛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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