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부모는 종종 자녀의 부당한 언행에 대하여 온유하기보다는 그의 부당함을 중지시키려는 마음이 앞서 자녀의 언행을 중지시키는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하여 자녀를 화나게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요즈음 많은 어린 자녀들이 스마트 폰을 수시로 보는 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습관이라고 보기보다 스마트 폰 중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중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이런 피해를 잘 알고 있는 부모의 자녀가 스마트 폰의 재미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에 거센 폭풍우가 일어납니다. 부모는 그런 자녀의 모습에 매우 실망하여 그것을 제지하려고 자녀의 스마트 폰을 빼앗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자녀는 부모로부터 빼앗긴 이유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학대받았다고 생각되어 분노나 실망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자녀와 부모 사이에 소동과 같은 싸움이 일어날 수 있으며, 양자 사이에 신뢰가 사라지고 원망하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행동은 슬기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녀의 행동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녀의 모습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녀의 그 원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녀를 분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행위에 대한 원인보다 자녀의 부당한 행위에 집중하여 거칠고 지각없는 행동으로 자녀의 마음에 악한 분노를 두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녀가 이와 유사한 언행을 할 경우마다 같은 상황이 발생하여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부모들도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에게만 부모께 일방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녀가 부모께 순종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듯이, 부모도 자녀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의 관계가 아니고, 서로 존중하고 감사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물론, 자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부모의 교훈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분노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나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가진 우리는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는 사탄이 좋아하는 일입니다. 분노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점에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탄은 지독하고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한 번 지배를 받게 되면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네덜란드의 성직자 헨리 나우웬은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분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분노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원하는 것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것이 일어날 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타인이 행동해주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분노에 대한 그의 해법은 쓸데없는 분노에 속지 않으려면 기대를 조금 줄이고 우리 자신과 사회에 대해 절대적인 원칙을 적용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의 태도를 보면 사울이 이유 없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도 하나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즉 그는 모든 분노와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시편 50: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처럼 분노의 상황은 환난이므로 즉시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러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시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인본적인 태도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자녀의 손을 잡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해답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담대한 믿음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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