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나라 안이 깨끗하면 재주 있는 사람이 벼슬이 높고 귀하게 되며, 집안이 부유하면 어린 아이들이 교만하게 된다.(國淸才子貴 家富小兒驕)” 아니 이게 뭘까?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는 오늘도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자갈밭을 갈던 중 호미 끝에 부딪친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은으로 된 항아리 였다. 그 속에는 금은보화와 함께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편지에는 삼형제의 고조할아버지께서 후손에게 보물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삼형제의 고조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임금으로부터 받은 하사금을 모아 두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왜 이런 곳에 금은보화를 묻어 두었을까?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던 어머니는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떠 오리고는 아무도 몰래 자갈밭을 더욱 깊이 파고 금음은보화가 담긴 은항리를 다시 묻었다. 자식들은 차츰 커 가자 작은 자갈밭에 매달려 살 수가 없어서 새로 자갈밭을 일구다가 금은보화를 발견 했던 것이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금은보화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다시 묻어 버렸으니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세 아들을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엄하게 키웠다.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자란 세 아들은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 또한 남달리 높았다. 마침내 세 아들은 한 해씩 걸러 모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 때서야 어머니는 금은보화가 담긴 은항리를 파내어 세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세 아들에게 자기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말해 주었다.

 “어머니, 이런 보물이 있었으면서도 왜 길고 긴 세월 동안 가난 속에서 고생하셨습니까?” 세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집안이 지나치게 넉넉하면 아이들이 교만하게 된다는 성현의 말씀을 받들기 위해서였느니라.” 세 아들은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그러시면 지금은 어찌하여 이 금은 보화를 저희들에게 똑 같이 나누어 주시옵니까?”

“이제 너희들을 믿기 때문이거나, 또한 이러한 재산을 넉넉히 갖고 너희들이 벼슬에 나아가 있으니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나랏일을 깨끗이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 벼슬에 나가, 나라 안이 깨끗해지면 재주 있는 사람들이 뒤를 이어 벼슬이 높고 귀하게 되는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 세 아들은 몸가짐을 더욱 바로 하고 머리를 숙였다.(출처 : 이야기 명심보감)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시라도 내 자식을? 내 자식만? 내 자식이? 내 자식의? 내 자식은? ‘오직 내 자식만 있다!’ 생각하며 그들의 인생 끝에 죄만 쌓이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주에 나눈 내 자식만은  상위 0.01%의 AI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들에게 ‘미래에 그 아이들은 부모에게 효도 할까요?’ 라는 질문은 한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작금에 각료에 추천되어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들, 기타 고위 공직자 등에게서 정직, 진실, 청빈, 인권 등을 어디까지 기대해야 할까? 그들에게 애린(愛隣)이란 말이 마음에나 있을까? 따라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경천애린(敬天愛隣)을 실현 하는 복을 누리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부모에게 효도란 말은 입에 담기조차 어렵게 되지나 않을까? 

(27)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10:27-28)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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