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10번째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는 율법으로 계약을 맺었다. 

하나님은 탐욕과 정욕으로 길들여져 가는 인간에게 엄금을 내리신 것이다. 만악의 근원은 탐욕과 정욕이다. 탐욕과 정욕으로는 마음의 변화, 인간의 변화는 물론, 참된 공동체를 열수 없다. 나를 열지 않고서는, 가정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가페를 실현 할 수 없다. 새로운 미래로 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열 번째 계명은 탐욕과 정욕을 버리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인간 모두가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율법으로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22장20-26절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마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마라/……/너희 가운데 누가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주게 되거든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마라/만일 너희가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는 말씀은 약자들을 위한 인정어린 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가 호소하면, 아우성치면,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집트를 벌하신 것처럼,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열 번째 계명의 핵심은 생명이다. 탐욕과 정욕에 사로잡힌 강자들처럼 바벨탑을 쌓지 않고, 가장 약한 과부, 고아. 떠돌이들이 안심하고 사는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생명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그리고 그가 함께 사는 다민족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사람이 실수하여 다른사람의 생명을 해쳤을 경우, 도피성으로 피신을 하면,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는 사려 깊은 제도야 말로 생명의 중요성을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엿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약속한, 곧 땅과 후손, 그리고 민족이 서로 축복을 하는 정의와 평화공동체에 대한 약속이 이룩된 것이다.   

가나안 땅에 수많은 해방된 민족들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스웨덴의 심리학자 칼 융은 "어떤 종족이건 그 종족이  형성되는 시초의 정신은 그 종족의 알케타입이 되어 그 종족에게 유전되어 내려오면서, 그 종족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출애급 공동체는 히브리인들의 알케타입(어느공동체이건 소유하는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그 집단이란 문제에 부딛칠 때, 그 집단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주는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월트 브르그만은 출애굽 공동체의 탄생을 생명공동체의 원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곤경에 처했을 때, 출애급 경험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오늘 대한민국 역시 단일민족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민족이 함께 사는 공동체로 변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은 이민자들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다. 오늘 세계는 혼자 살 수 없다. 이민족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노동현장에서 죽임당하는 사람 없이, 버림받는 아이들이 없이, 전쟁으로 인해 죽임당하는 사람 없이, 하나님의 창조적 모습대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나라, 평화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룩해야 한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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