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이것이 곧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 ㅡ카뮈, <시시포스의 신화> 중에서

제우스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시시포스는 매일같이 거대한 바위를 높은 언덕 위로 운반해야 했다. 죽을힘을 다해 바윗덩어리를 언덕 위에 올려놓으면 바윗덩어리는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졌고, 다시 올려놓으면 또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쉼 없이 언덕 위로 바윗덩어리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우리 인생에 빗대어 쓴 글이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시시포스의 신화〉이다.

카뮈는 '왜 사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벌레가 사람 마음속에 깃드는 것'에 비유하며 인생의 부조리함을 먼저 인정하고, 그 후에 '나는 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한다. 삶의 본질은 질서정연한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와 모순과 혼동 그리고 공허라고 말한다.

정상 탈환을 눈앞에 두고 꿈의 깃발을 꽂으려는 찰라, 또 다시 바위는 굴러 떨어진다. 절망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그에 반해 희망의 크기는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의 삶이 그토록 허망한 것이라 해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자신이 삶에 패배했다”는 멜로 드라마적 고백이라고 카뮈는 역설한다.

“나의 삶, 나의 반항, 나의 자유를 최대한 느끼는 것, 이것이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다.”

또 다시 굴어 떨어질 게 번한 바위를 줄기차게 밀어 올려야 하는 비극적 상황일지라도, 카뮈는 '최대한으로 살기'를 권한다. 그것은 어쩌면, 부조리하고 모순되고 혼돈스럽고 공허한 인생이기 때문에 나의 삶과 나의 반항과 나의 자유를 최대한 느끼며 사는 사람만이 삶을 견딜 수 있다는 충고일지도 모르겠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흘러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점이 연속하여 선이 되는 것처럼, 새털 같은 경쾌한 순간의 연속이 생이었습니다.”

풀리지도 않는 인생의 문제를 자꾸 책망하다 보면, 내가 삶의 수례바퀴에 콕 박혀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대신 카뮈처럼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다시는 놀고 싶지 않을 만큼 놀아보고, 다시 걷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도 보고, 다시는 이렇게 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밤새워 일해보고,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렇게 뭔가에 나를 완전히 몰입시킨 순간순간들이 있어야 생의 마지막 날, “나는 최대한으로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르친 어제의 일 때문에. 오늘의 내가 풀죽어 있으면, 내일의 나도 한심해진다. 어제의 일이 내일의 나를 짓누르게 해서는 안 된다.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 이 순간의 나는 그저 이 순간의 나 일 뿐, 나는 매 순간 새로 태어날 수 있고 시간마다 새로운 세계를 살 수 있는 기회의 사랑, 행복한 시시포스이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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