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대표자적 신적인 권위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표자적 신적인 권위이다. 누구도 권위를 무너뜨릴 수 없다. 도전 할 수도 없다. 이 권위를 무너뜨리거나, 도전하면 큰 죄로 돌아오게 된다고 성경은 교육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회와 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권한을 부모에게 완전히 위임했다. 결국 부모는 주안에서의 권한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신적인 권위이다.

하나님은 다섯 번째 계명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었다. 이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단어의 원어는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말과 같은 단어이다. 이 계명은 동양에서 말하는 낳아 기른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신명기 64-7절의 말씀은 이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이 성경말씀은 부모된 자들의 첫 번째 의무이다. 전능하신 손으로 혹독한 파라오의 노예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업적을 자녀들에게 전해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들 통해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모는 야훼 하나님의 대언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모를,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오늘 아빠찬스’, ‘엄마찬스로 출세를 지향하는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에게는 전혀 마음에 닿지 않는 말이다. 오늘날 부모가 자녀들을 이 토대 위에서 우리의 과거 아픈 역사와 문화, 일본식민지 압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참사랑을 교육했다면, 부모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부모는 많은 재산을 만들어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유업이 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버렸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가정은 어머니의 아가페, 하나님의 참사랑을 교육하는 가정이 아니다. 모두가 내 안에 갇혀 개방된 가정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이웃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이 같은 모습은 과거정부나, 현 정부, 장관후보자들의 청문회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신적권위 퇴색
편법과 반칙 등으로 그들만을 위한 세상 구축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

부모의 대표자적인 신적인 권위는 오래전에 땅에 떨어졌다. 경쟁사회에서 자녀를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의 참사랑을 교육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교인들의 자녀들 중에 주일성수를 지키는 자녀가 몇 명이나 될까. 조용히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하면, 그 해답은 분명해 진다. 과거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주일날 부모와 함께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현대가정은 그렇지 않다. “대학입시준비를 해야 한다”, “어머니·아버지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녀인 나도 강제적으로 교회에 다녀야 하나”, “아버지가 목사이지 나는 목사가 아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등등의 이유를 내세워 예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교회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죄의식을 전혀 갖지 않는다. 한마디로 부모의 대표자적인 신적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보니 우리가정과 사회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이미 잃어버렸다.

특히 편법과 반칙으로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이며, 자녀교육에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서 이탈하는 아이들은 비행청소년, 아니 나쁜 아이로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오늘 우리사회는 출세주의를 지향한 나머지, 과거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의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가정의 부부,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 드리질 못한다.

그렇다보니 이혼율이 높아지고, 부모에 대한 효의 사상이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 가정은 더욱 심각하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부모도 없는 종교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일부교회 목회자의 잘못된 가정에 대한 교육은 한국기독교를 효의 사상이 결여된 종교로 보는 편견을 갖게 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결여된 효의 사상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를 않고, 세상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것은 일부 교인들의 실종된 효의 사상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인이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가정 전체가 효의 사상이 실종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사실 한국교회 만큼 를 강조하는 종교단체도 없다. 실종되는 효의 사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대학원까지 생겼다.

기독교가 유교의 효의 사상보다도 더 강조하는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효는 유교에서 말하는 낳아 기른 부모를 공경하라는 뜻을 뛰어 넘는다. 일부교회는 제5계명에 근거해서, 교인들에게 효의 사상을 교육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노인대학을 비롯한 경로잔치, 독거노인 및 조손가정 반찬배달, 효도관광, 노인시설 운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마저도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 5월 가정의 달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대부분 중단된 상태이다. 교회 내 어르신들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공 예배마저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어르신들의 삶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처절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어르신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즐기는 자신들만의 공동체인 마을 노인정마저도 문을 닫아버린 상태이다.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렇다고 교회가 노인정과 같은 시설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 역시 신종바이러스감염증 이후 교회의 재정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작은 교회들은 교인들이 드린 헌금으로 교회의 경상비도 쓰기 어려운 처지이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재정을 다른 곳에 지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줄일 수 있는 사회복지 비용 또는 선교사 선교비 지원, 작은교회 지원 선교비를 일단 멈춘 상태이다. 개방적인 교회의 역할에서 이탈했다.

한마디로 교인들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실천하는 교육현장이 신종바이러스감염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이 유교의 낳아 기른 부모를 공경하라는 진리를 뛰어 넘는 진리,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를 상실한 결과이다. 문제는 교회의 효 교육 프로그램을 일부 목회자 및 교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반면 일부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한 교회선교 프로그램이 교회성장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효의 사상이 실종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5월이면 한국교회 안에서 쏟아지던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잔치, 노인대학, 어르신 관광 등의 프로그램이 정부의 방역정책에 따라 전무한 상태에 있다. 즉 교인들의 제5계명 교육실천현장이 사라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교회의 이름을 들을 수 없다. 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대학과 노인잔치는 어르신들의 황혼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성장의 토대로 삼고, 교회의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결과를 가져다가 준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교회들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부천 오정성화교회, 군산 중동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이다.

이들 교회도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이를 중단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런 사이 어르신들의 삶은 더욱 고독 할 수밖에 없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지금까지 요양원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부모의 면회도 막혀 있었다. 외로움을 못 견뎌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은 더 했다. 그렇다보니 가정에 대한 중요성은 상실해져 가고, 나를 개방해 이웃을 받아드리는 개방된 가정과 교회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성서 새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제시

이 땅의 여성은 모두의 어머니, 어머니 됨을, 이 땅의 남성은 모두의 아버지, 아버지 됨을 살실했다. 앞서 지적했듯이(본지 54<가정 하나님의 참사랑아가페를 실현하는 교육현장>)성서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정, 새로운 어머니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효의 사상이 실종된 종교단체로 낙인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5월 가정의 달,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살아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찾아뵙는데 있어서 주일예배 등을 핑계로 부모님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탈하는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심지어 부모을 학대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이들이 모처럼 할아버지·할머니 곁이라도 가면 마치 벌레가 옆에 가기라도 하듯 가로 막는가 하면, 폭언·폭력 등을 일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랑의 종교이며, ‘효의 종교로 알려진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일반인들은 저것이 무슨 교인이냐(?)”면 비아냥거린다. 그리스도인의 이 같은 모습은 좁아진 한국교회 선교의 문을 더욱더 좁아지게 만들고 있다. 이는 마이너스성장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성서의 중심사상인 사랑과 웃어른에 대한 효의 사상을 회복, 하나님의 참사랑, 아가페를 가정부터 실현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효는 율법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 율법은 인간 스스로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약속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이다. 또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약속한 축복으로 다가 올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모란 자신을 낳아준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을 있게 한 조상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최성규 목사는 한국교회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효의 정신이 있기에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다. 한국이 인류문명에 이바지할 정신적 유산이 가족제도와 효의 정신이라는 토인비의 말처럼, 한국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효자와 효녀가 될 때, 대한민국에 희망으로 다가 올 것이다면서, “효는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닌 광의로 해석해야 한다.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아담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효는 창조주 하나님을 시작으로 부모와 어른, 스승, 가족, 나라, 자연, 이웃과 인류로 확대되며,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효의 사상이다. 새로운 눈으로 성경을 보면, 명령과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약, 신약, 그 중 율법서, 복음서 모두에 명령과 약속이 다 들어 있다, 성경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믿으며, 그 명령에 순종하고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효의 사상이다고 성격적 효의 사상을 설명했다.

효는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

효의 실천은 하나님의 명령임에는 틀림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의 대표자로 가정에는 부모, 학교에는 교사, 교회에는 교역자, 국가에는 통치자, 기관에는 책임자를 세웠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부모의 대표자적 권위는 신적인 권위이며, 물리적으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권위라는데 문제가 없다. 또 이 권위를 무너뜨리거나 도전하면 큰 죄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사회와 국가에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의 권한을 부모에게 완전히 위임한 것이다. 결국 부모는 주안에서의 권한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성경은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교훈하며, ‘효의 사상을 교육하고 있다.

의인이 아버지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24~25)”,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로새 3: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1)”,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태복음 19:19)”,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레위기 19:3)” 등이 바로 효 사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안에서 효의 사상이 결여되고 있는 것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서의 말씀대로 살지를 않고, 조상에 대한 예를 우상숭배로 터부시하고, 이것도 모자라 조상에 대한 예를 위해 모인 가족들을 마귀집단으로 매도하는 등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그렇다보니 교회는 국민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고, 선교의 장은 경색되어가고 있다. 기독교인은 자신이 말하는 핍박을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당할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신의 신앙만이 최고인양, 자신을 드러내는데 급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기독교는 애미도 애비도, 몰라보는 종교단체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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