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운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세계질서 속에서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가슴 속에 귀하게 다가온다. 십자군 전쟁 이후, 기독교 국가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 대부분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는 사실. 신자유주의경제체제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에 대한 경제침략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최고의 가치는 자유를 내세운 금융이 됐다.

부자나라는 금융으로 작은 나라를 옭아맨다.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여기에 상응하는 높은 이자를 받는다.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는 IMF(국제통화기금)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무기를 구매해 자신의 아성을 쌓는다. 그리고 자유를 내세워 고리대금업을 한다. 가난한 나라가 IMF 등으로부터 빌린 돈은 가난한 국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갚아야 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자유는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전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을 자유케 한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는 자유이며, 사랑하는 자유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홀로 있는 자유가 아니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죄와 욕심, 탐욕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가 죄의 종이 되어 종의 노릇을 했다. 섬기며, 사랑하는 자유를 상실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만인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이다고 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인 동시에, 만인으로부터 자유롭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는 자유의 삶을 살지를 않는다. 내 멋대로 살아간다. 나 자신을 위한 삶이다. 이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민주주의를 말 할 때마다 자유를 붙여 자유민주주의를 말한다.

자유 민주주의는 오늘 신자유주의경제체제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37번에 걸쳐 자유를 외쳤다. 성서에서 이탈한 자유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것 같이 보이지만, 나와 이웃을 죄의 죽음에로 이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자유로운 삶을 살게 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은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민족을 해방시켜 가나안서 많은 유랑민, 떠돌이들과 함께 살도록 했다.

즉 자유롭고 평화로운 다민족공동체를 이룩했다. 자유는 제멋대로 사는 삶이 아니다. 인간 모두는 민인으로부터 자유 하지만, 섬기는 만인의 종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가치는 새로운 세상을 연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섬기는 사랑, 하나님의 아가페를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런 자유,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는 자유, 하나님의 아가페서 발견된다.

창조주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아가페를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자유는 거짓자유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자유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맹목적인 자유이며, 공허한 자유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 할 수 있게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아가페를 위한 자유이다.

아가페를 위한 자유가 상실되면서, 우리사회는 범죄 집단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자유라는 이름아래 범죄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 할 수 있는 자유와 모든 사람의 종노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죄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켰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의 자유는 성서가 말하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자유는 자신을 속이는 방임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자유와 복음의 자유를 주기 위해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인간은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이며, 아가페이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높은 담과 벽을 무너트려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된 이웃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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