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성막의 부품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대략 보석(금, 은, 놋)과 섬유(실, 베, 털), 그리고 향품(기름) 등 7 가지다(출 25:3-7). 이 과정은 모두 재료를 활용한 제작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동사 아싸(השׂע)가 사용되었다. 아싸는 성막과 관련하여 50 차례 이상 나온다. 눈여겨볼 것은 단수형과 복수형이 번갈아 나온다는 점이다. 빈도수로 보면 단수형 완료 와 미완료가 출애굽기 25-30장에 이르러 압도적인 비율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으며(출 25:11,13,17-18,23-29,31,34; 25:18,29; 26:1,4,5,7,17; 27:3,8; 28:11,14,15,39,40; 29:2,36,38,39; 30:1,4,37), 복수형 역시 완료와 미완료가 함께 나온다. 특히 복수로 표기된 본문은 성소와 법궤 제작(출 25:8,10)에, 그리고 제사장의 직분과 복식(흉패와 에봇)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출 28:3,4,6). 복수 동사는 이스라엘을 3인칭으로 여기고 단수는 모세를 2인칭으로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수와 단수의 변화를 보여주는 본문은 언약을 맺기 전의 상황과 겹친다. 출애굽기 19장은 성막 제작의 경우와 달리 3인칭 복수에서 3인칭 단수로 전환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난 후 3 개월이 지나는 동안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 곧 하나님의 산에 머물기 위해 장막을 친다(1-2절).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줄곧 3인칭 복수 ‘그들이’ 시내 광야에 도착하고, ‘그들이’ 르비딤을 출발하여, ‘그들이’ 시내 사막에 들어와서 ‘그들이’ 광야에 텐트를 설치한 후, 마지막 문장에는 단수 ‘이스라엘’이 ‘그 산’ 앞 그곳에 장막을 친다 . 이집트 땅을 떠난 후 언급된 일련의 동사 주어 3인칭 복수는 ‘이스라엘 자손’이지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에서 주체는 3인칭 단수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다. 

이집트 탈출 이후 ‘수많은 잡족’에 불과하던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 당도했을 때는 하나의 이스라엘, 오합지졸 무리들이 드디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기에 단수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마침내 하나의 이스라엘 되었기에 하나님의 산 앞에 장막을 치고 비로소 하나님의 계시 앞에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모세가 산 위에 오른 지 사흘 째 시내산에서 연기와 불과 땅이 진동하는 중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출 19:19). “나는 너(단수)를 이집트 땅 종이던 집에서 인도해낸 네(단수) 하나님 야웨라”(출 20:2).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단수로 표기된 ‘하나인’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성막 제작 과정에서 일어난 인칭의 변화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세에게 말씀하신 2인칭 단수는 성막 전반에 관련된 부품을 만들라는 명령이라면 3인칭 복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즉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복수 형태는 하나님이 머물 8절의 성소, 길이 2½, 너비 1½, 높이 1½ 규빗의 법궤(10절), 그리고 제사장의 복식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출 28:3-5).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 ‘그들’은 이스라엘 개개인보다 출애굽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법궤의 제작 과정에 책임적인 자세로 참여하라는 뜻이다. 자연히 하나님의 현존과 직접 관련되는 거룩한 공간은 물론이며 성막에서 이뤄질 모든 제의의 책임자인 제사장의 옷과 흉패와 에봇 등에도 동일한 원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막의 여러 부품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거룩한 공간을 완성하듯 이스라엘의 개별적 협력과 연대가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거룩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모세와 이스라엘은 성막의 건축과 함께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성막의 한 가운데 놓인 가장 거룩한 장소 법궤를 제작하는 일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의 자발적인 헌신과 정성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법궤 안에 안치된 두 돌판에 들어있는 십계명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지켜야할 계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법궤의 제작에 참여하라는 명령은 동시에 토라의 순종과 실천을 함께 요구한 셈이다. 유대교의 한 현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법궤 제작에 기여하게 하고 토라를 각각 맛보게 하라.” 이와 관련해 “토라를 배우고 깨우친 망나니가 무지한 대제사장보다 낫다”는 격언과 함께 생각할 구절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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